[역사문학의 새로운 성취 ‘소설 대장정’] ‘서사의 힘’ 입증한 대작

입력 2011-01-21 17:27


1980년대 중반, 중국 고문서보관소에 묻혀 있던 대장정 관련 자료들이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미국의 언론인 해리슨 솔즈베리와 중국 소설가 웨이웨이(1920∼2008)가 이 자료들을 마주한 채 대장정의 진실을 세상에 온전히 드러내고자 펜을 잡았다. 두 결과물은 1980년대 후반에 거의 동시에 나왔지만 그 결은 참으로 달랐다.

해리슨 솔즈베리의 ‘대장정’이 언론인 특유의 중립적인 어조로 써내려간 르포르타주였다면 웨이웨이의 ‘소설 대장정’(보리출판사)은 확신과 경외로 가득 찬 채 거대한 대륙의 운명을 뒤바꾼 역사 속의 대장정을 흡인력 있게 되살린 문학적 성취로 평가받고 있다.

77명의 실존 인물과 23명의 가공인물들을 씨줄과 날줄 엮듯 촘촘히 엮어 대장정의 전체 모습을 한 눈에 보여주는 ‘소설 대장정’은 작가가 이 놀라운 역사를 부풀리거나, 힘주어 강조하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면서 기록 문학의 객관성과 문체 예술의 독창성으로 버무려낸 솜씨가 돋보인다. 풍성한 재미는 바로 거기에서 나온다.

이야기가 사라져가는 세상, 소설이라는 장르가 점점 힘을 잃어가는 시대에 ‘소설 대장정’은 모스크바 출신 볼셰비키들에게 밀려 늘 찬밥 신세였던 촌뜨기 마오쩌둥이 어떻게 중국 혁명세력의 헤게모니를 장악해 가는지를, 그리고 쓰라린 패배와 고난을 딛고 중국 홍군이 어떻게 인민의 마음을 얻어 누구도 감히 짐작하지 못한 운명을 기어이 거머쥐게 되는지를 흡입력 있게 서술하고 있다.

“1934년 12월1일, 넓고 푸른 샹강(湘江)이 피로 물들었다. 지난 11월 말 장시(江西) 소비에트 구역에서 온 중앙 홍군은 구이린(桂林) 북쪽에 있는 샹강 기슭에서 국민당군에게 가로막혔다. 홍군은 방어선 세 겹을 헤치고 이천삼백 리를 싸우면서 여기까지 걸어왔다. 높은 산과 가파른 고개를 넘고 숲과 가시덤불을 헤치며 걷고 싸웠다. 짚신은 닳아 떨어진 지 오래고 군복은 진작 너덜너덜해졌다. 적군은 끈질기게 뒤쫓아왔다”(1권 14쪽)

그해 10월 15일, 홍군은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당 정부의 5차 포위 토벌을 물리치지 못한 채 장시 루이진에 수도를 둔 중앙소비에트 구역에서 작전상 후퇴를 단행한다. 8만명을 아우르는 패잔병의 행렬은 18개의 산을 넘고 24개의 강을 건너야 했으며 해발 3000m가 넘는 초지를 두 번이나 가로질러야 했다. 368일에 걸쳐 1만2500㎞를 걸어 목적지인 우치진에 도착했을 때, 살아남은 병사들은 8000명이 채 되지 않았다.

그러나 “살아남았다는 것이 곧 승리”라고 했던 마오쩌둥의 말은 고스란히 진실이 되었다. 쓰라린 패배의 기억을 걸머진 채 느릿느릿 움직이는 고난의 행군. 홍군이 걷고 또 걸으면서 마주친 것은 중국 땅에서 가장 가난하게 살아온 민중들과 집권 세력에게 핍박을 받으며 살아온 소수 민족들이었다.

“멀리 마을에 있는 농가에서는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눈에 익은 풍경을 보니 이제야 한족들이 사는 지역에 들어선 것 같았다. 날씨도 많이 서늘해져서 길가에 있는 버드나무 잎이 누렇게 시들기 시작했다. 마오쩌둥은 개운한 마음으로 시를 읊조렸다”(5권 301쪽)

장정을 마친 지 20년이 지나지 않아 홍군은 중국 전역을 장악했으니, 험난한 여정을 딛고 간신히 살아남은 초라한 대오는 혁명의 파종기에 뿌려진 씨앗들이었던 것이다. ‘소설 대장정’은 참혹한 패배의 기록이기에 더욱 가치가 있다. 텐진 미술학원 교수를 역임한 화가 선야오이가 6년에 걸쳐 그려낸 900장이 넘는 판화 기법의 삽화는 대장정의 속살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문자는 삽화를 밀고 삽화는 문자를 밀어 또 하나의 장강을 흐르게 하는 대작이다.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