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성희 시집 ‘악어야 저녁 먹으러 가자’

입력 2011-01-21 17:26


악어의 뱃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궁금해지는 시집이 시인 배성희(52·사진)의 ‘악어야 저녁 먹으러 가자’(서정시학)이다.

“축구공을 꿰매느라 노예처럼 일하는/아이들, 아쿠아리움 속 우리도 다를 바 없다//신(神) 지핀 순간/내가 너를 사랑해서 모든 일이 시작되었다/문지기를 노려보는 것은 목숨을 거는 도전//(중략)//주린 배를 채우러 가자 악어야/아마존으로 가자”(‘악어야 저녁 먹으러 가자’ 부분)

시인은 대형 수족관에 갇혀 있는 악어를 보고 시상을 떠올렸을 것이다. 악어는 곧 시인 자신 안의 갇힌 욕망으로 변주되는 데 문제는 갇힌 욕망을 언어라는 수단을 통해 풀어놓는 방식이 도마뱀의 꼬리처럼 뚝뚝 끊어진다는 데 있다.

‘신 지핀 순간’이라는 말에 창조주의 전능함 같은 게 읽혀져 일견 흥미롭다. 하지만 시인은 이처럼 말을 하다 말고 숨어버리는 은폐 혹은 언어 생략에 관습화되어 있는 것일까. “끝까지 가져가는 비밀이 있다//불린 쌀 한 줌 입에 머금은 채 쏘다닌/49일 마지막 날/없는 안경테를 만지며/공원묘지 행 버스를 기다린다”(‘환승역’ 부분)

‘끝까지 가져가는 비밀’, ‘쌀 한 줌 입에 머금은 채 쏘다니는 49일’ 등에 함축되어 있는 진의야 알 길이 없지만 시인은 이를 앙 다물고 자기만의 비밀 결사를 만들어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자의식의 과잉 혹은 폐쇄성이랄 수 있을 터다. 그의 시적 기저에는 어떤 고민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뜻밖에도 시에서는 은폐되거나 생략되어졌던 고민의 단초를 ‘시인의 말’에서 엿볼 수 있다. “여기는 불온한 핏줄이 자라는 해저.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의 잠수종에 연결된 공기 펌프는 인간이라는 슬픔에 대하여 끝없이 질문하고 있다.”(‘시인의 말’)

시인은 ‘인간이라는 슬픔에 대하여’ 앓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다시 표제시로 돌아가면 “내가 너를 사랑해서 모든 일이 시작되었다”는 진술은 신의 말에 빚댄, 자신을 너무도 사랑한 시인 자신의 말이다. 결국 시인은 악어 자체인 동시에 악어 뱃속에 들어 있는 것도 시인 자신이었던 것이다.

정철훈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