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고위급 군사회담 제의 배경·전망… 남북대화 통해 6자회담·워싱턴 가는 ‘징검다리 놓기’
입력 2011-01-21 00:29
북한이 20일 고위급 군사회담을 정식으로 제의한 것은 올해 초부터 계속돼 온 대남 대화공세의 ‘완결판’으로 해석된다. 우리 정부가 이를 수용하고 비핵화 문제를 별도로 논의할 고위급 회담을 제의키로 한 배경은 향후 남북대화 주도권을 잡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미·중 정상회담이 마무리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김영춘 인민무력부장 명의로 고위급 군사회담을 공식 제의해 왔다. 남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 국면 전환의 소재로 활용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남북대화를 통해 베이징(6자 회담), 워싱턴(북·미 대화)으로 가는 징검다리를 놓겠다는 전략의 일환이다.
우리 정부가 북측 대화제의를 수용한 것은 북측 제의가 형식을 갖추고 구체적이라고 판단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김영춘 인민무력부장 명의의 통지문을 김관진 국방부 장관 앞으로 보낸 것으로 당국 간 회담제의 형식은 갖췄다는 것이다. 또 통지문에서 북한이 ‘천안호 사건과 연평도 포격전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상태를 해소할 데 대하여’라고 제의함으로써 대화에 나갈 명분은 충족된 것으로 판단한 듯하다. 명분이 주어진 만큼 대화에 응하지만 예비회담에서 북한의 진정성이 확인되지 않을 경우 남북고위급 군사회담에 나갈 수 없다는 쪽으로 출구도 마련해놓은 모습이다.
또 다른 이유는 북한의 대화제의를 계속 거부할 경우 남북관계 경색 원인을 남측에 돌리고 미국과의 직접 담판을 노리는 북한의 ‘통미봉남(通美封南)’ 전술에 휘말릴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허문영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은 일본의 최근 북·일 대화 재개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미국과는 우라늄농축 프로그램(UEP)을 활용해 접근하는 방식으로 남한을 고립시키는 구도를 만들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일단 북한과 대화를 하면서 동시에 UEP 문제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로 가져가는 방안을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안보리를 통해 간접적으로 북한을 압박해 남북대화를 유리하게 이끌어 가기 위한 지렛대로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북한은 중국을 중심으로 UEP 문제가 유엔 안보리로 넘어가 추가 제재로 이어지지 않도록 차단하는 데 외교력을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공동성명에서 중국이 북한의 UEP에 우려를 표시한 만큼, 안보리 논의가 탄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고위급 군사회담을 제의한 북한이나 이를 수용한 우리 정부의 계산법이 달라 회담의 성사 여부는 불투명하지만 오랜 기간 평행선만 달리는 남북이 접점을 찾은 것이어서 의미가 작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