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총 이젠 변해야 한다] (중) 허술한 시스템

입력 2011-01-20 20:45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를 취재하다 보면 비생산적, 비효율적 운영 시스템을 쉽게 감지하게 된다. 거대한 연합기관은 체계적이고 투명한 의사결정 과정이 담보될 때만이 모든 구성원의 마음을 잡을 수 있는데도 영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매우 민감한 주제(정관 개정, 이단사이비 대책 등)를 놓고 회의를 하면 최소한 참석자 모두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 전체 내용을 파악한 뒤 활발하게 의견을 개진하고 결론 또한 신중히 내려야 한다. 그러나 다음 회의에 지난 결의가 번복될 수 있다는 게 지금까지 한기총의 일그러진 형상이었다. 예를 들어 정관, 운영세칙, 선거관리규정이 실행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됐다가 임시총회에서 압도적 표차로 부결된 것이나 다음 회기에 논의키로 했던 이단사이비 문제 결의가 번복되고, 이어 한기총 리더십에 대한 회원교단들의 성토 기자회견이 열리는 등 ‘갈지자 행보’를 보여 왔다. 또 모든 한국교회가 주지해야 할 주요 결정이라면 그 자리에서 회의록을 채택해야 나중에 딴소리가 나오지 않을 수 있는데도 ‘회의의 관성’에 따라 그렇지 못해 갑론을박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같은 논란이 일어나는 것은 회원 교단 및 단체들의 핵심 관계자로 구성됐다는 임원회 및 상임위원회 등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특히 핵심 관계자라 해도 관련 교단 및 단체들의 뜻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거나 탁월한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했다면 지도력을 제대로 행사하기 어렵다.

특히 대표회장 선거 후 논공행상에 따라 임원과 상임위원장이 구성되면 실제로 일할 수 있는 인사들은 ‘관전자’로 전락하게 되고, 한기총은 아젠다 설정과 추동력을 갖추는 데 실패하고 만다. 그러면 특정 인사 중심의 네트워킹에만 의존한 정책이나 행사 등이 추진돼 인원은 물론 재정 동원조차 힘겨워진다.

즉, 구성원들에게 ‘다 함께 짊어질 과제’보다는 ‘그들만의 리그’라는 부정적 인식을 심어주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본보의 ‘2011년 한기총 설문조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교계와 사회에서 지도력을 확보하기 위해 개선할 점으로 임원 및 실행위원 174명 중 56명(32.2%)이 ‘회원교단의 의견을 반영하는 논의 구조 확립’을, 26명(14.9%)이 ‘싱크탱크 상설화 등을 통한 기획력 강화’를 꼽았다. 또 앞으로 주력해야 할 활동으로 174명 중 무려 149명(85.6%)이 ‘교회 연합과 일치운동’을 들었다. 따라서 향후 한기총의 경쟁력 강화는 구성원 간 보다 정밀한 협업을 통해 최적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과 정비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점에서 20일 길자연 대표회장 체제 출범과 더불어 발표된 임원과 상임위원장 명단을 유감스럽게 여기는 구성원들이 적지 않다는 걸 곱씹어봐야 한다. 한 인사는 “능력 있는 인사의 적재적소 배치, 공정한 룰 적용, 투명한 운영과 솔직함 등을 통해 공감지수를 높이지 못하면 (한기총) 안팎으로 존경은커녕 인정조차 받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오늘 한기총 지도자들에게 할 말이 있어 왔는데, 눈 씻고 봐도 한 명도 안 보이네. 정작 기도할 사람은….” 지난해 4월 소천한 조향록 목사가 2009년 11월 불편한 몸을 이끌고 한기총의 72시간 비상 특별금식기도성회에 말씀을 전하기 위해 왔다가 탄식 속에 한 말이다.

함태경 기자 zhuanji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