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염성덕] 강희락 斷想
입력 2011-01-20 18:52
강희락 전 경찰청장을 처음 만난 것은 1990년대 초반이었다. 그는 경찰청 경무계장, 필자는 출입기자였다. 주변에서는 그를 소탈하고, 화끈하고, 일을 잘한다고 평가했다. 그는 출입기자들을 만나 여론을 파악하려고 했다. 특유의 친화력과 노력하는 자세가 보기 좋았다.
그는 부산경찰청장을 거쳐 해양경찰청장에 임명됐다. 해양경찰청장이 경찰청장으로 영전하는 사례는 드물었다. 그래서 그의 경찰 인생도 끝나는 듯했다. 하지만 보란 듯이 경찰청장으로 우천(優遷)했다. 그가 ‘육상경찰’ 출신임에도 직전 보직을 염두에 둔 듯 “해양경찰이 육상경찰을 접수했다”는 말까지 나돌았다.
사회부장이었던 필자는 2009년 강 청장과 대담을 했다. 긴 세월이 흐른 탓인지 무척 반가웠다. 토호들의 비리 척결을 다짐하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대담 말미에 제안을 했다. “신호등에 잔여 시간을 표시하는 장치 있잖아요. 막대기가 줄어드는 도량형보다는 초(秒)를 나타내는 숫자형이 국민에게는 편할 텐데요. 노후 신호등을 숫자형으로 바꾸는 문제를 관련 기관대책 회의 때 제안하면 어떨까요.”
강 청장은 경찰이 개입할 사안이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제안한 사람이 머쓱해질 만큼 망설임이 없었다. 군사정권 시절에 신호등 교체권만 쥐고 있으면 일가친척이 먹고산다고 할 정도로 대단한 이권사업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필자는 그때 강 청장이 비리와는 담을 쌓고 살려는 인사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그런 그가 함바집 운영업자 유모씨로부터 인사청탁과 함께 거액을 받았다는 뉴스를 접하고 어이가 없었다. 강 전 청장이 금품수수를 부인할 때만 해도 실낱같은 기대를 갖고 있었다. 검찰의 구속영장이 기각됐고, 대법원의 확정판결 전까지는 무죄추정의 원칙이란 것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를 모셨던 경찰들이 이구동성으로 “강 전 청장의 지시를 받고 유씨를 접촉했다”고 진술하는 데까지 이르자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부하 경찰관들과 유씨 사이에서 거간꾼을 했다는 것은 참으로 염치없고 부도덕한 처신이었다.
1991년 내무부 치안본부에서 경찰청으로 분리 독립한 이래 15명의 경찰청장 가운데 7명이 뇌물수수, 직권남용, 직무유기, 선거개입 등의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고 강 전 청장을 제외한 6명이 사법처리됐다. 앞으로 조직에 누를 끼치는 경찰 총수가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경찰청을 출입했던 기자의 바람이다.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