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 집행 반세기 만에… “조봉암 간첩 혐의 무죄”

입력 2011-01-21 00:28

大法, 52년 前 판결 뒤집어

헌정 사상 ‘사법살인’의 첫 희생자로 불리는 죽산 조봉암 선생(1898~1959)이 사형 집행 반세기 만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박시환 대법관)는 20일 간첩으로 몰려 사형당한 진보당 당수 죽산에 대한 재심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및 간첩 혐의에 대해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무죄를 선고했다. 1959년 7월 대법원 재심 청구 기각 뒤 하루 만에 죽산의 사형이 집행된 지 52년 만이다.

재판부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진보당은 자본주의를 부정하거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반한 정당이라고 볼 수 없고, 조씨가 진보당 당수로 국가변란을 모의했다는 판단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간첩 혐의에 대해서도 “함께 기소된 양모씨가 진술을 번복하는 등 신빙성에 문제가 있고, 공소사실이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허가 없이 권총, 실탄을 소지한 혐의는 유죄를 인정했으나 간첩 혐의가 무죄라는 점 등을 들어 선고를 유예했다.

재판부는 52년 만에 판결을 뒤집었지만 공식적인 사과 대신 판결문 말미에 “재심 판결로 잘못을 바로잡는다”는 문구만을 남겨 과거사 반성에는 인색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독립투사로 활동한 뒤 건국의 주역으로 국회의원과 초대 농림부 장관을 지낸 죽산은 이승만 정권 당시 평화통일을 주장하다 간첩으로 몰렸다. 진실화해위원회는 2007년 이 사건을 이승만 정권이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저지른 조작으로 규정했고, 죽산의 유족은 대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죽산의 딸인 조호정(83)씨는 “정적을 무자비하게 살인하는 일이 다시는 없어야 한다”며 “내가 죽어도 돌아가신 아버지를 안심하고 뵐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