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조봉암 선생 무죄” 신속 판결 배경… 이용훈 임기내 ‘사법살인’ 매듭풀기
입력 2011-01-20 21:39
대법원이 20일 죽산 조봉암(사진)선생 사건 재심 결정 3개월 만에 신속하게 무죄 판결을 내린 것은 오는 9월로 임기가 만료되는 이용훈 대법원장 체제에서 과거사 문제를 빨리 정리하겠다는 의지로 볼 수 있다.
대법원은 지난 13일 지난해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고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민족일보 조용수 사건, 울릉도 간첩단 사건, 아람회 간첩단 사건, 납북어부 사건 등을 판결했다. 지난해 12월에는 유신시대 체제유지 수단으로 기능했던 긴급조치 1호에 대해 위헌을 선언했다.
이 대법원장은 2005년 인사청문회에서 “재심 사건이 하급심에서 끝나는데 대법원에 올라와 사법부의 과거에 대해 한마디 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언급했다. 이후 과거사 정리 작업을 꾸준히 진행해 1970∼80년대 군사정권 시절 판결문 6500여건을 분석, 국회에 자료로 제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대법원장의 의욕에도 불구하고 사법부가 과거사를 진심으로 반성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2008년 사법부 60년 기념식에서는 “권위주의 체제에서 사법부가 헌법상 책무를 충실히 완수하지 못해 실망과 고통을 드린 데 대해 죄송하다”는 원론적인 말만 해 반쪽짜리 반성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1958년 간첩 혐의 등으로 기소된 죽산 선생은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으나 2·3심에서 각각 사형이 선고됐고, 이듬해 재심청구 역시 기각됐다. 사법부는 이 사건으로 ‘사법살인’이라는 혹평까지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대법원은 잘못을 진솔하게 인정하기보다 판결문 끝에 공소사실이 대부분 무죄로 밝혀져 그 잘못을 바로잡는다는 언급만 했다.
죽산 선생의 유족과 변호인은 대법원이 당국 허가 없이 권총과 실탄을 소지한 혐의(군정법령 위반)를 유죄로 인정하자 여전히 수긍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최병모 변호사는 “대법원이 관련 규정이 없어졌다면 면소(형사사건의 소송 절차를 종결시키는 재판) 판결을 해야지 선고유예 판결을 내린 것은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흡한 과거사 반성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의 과거사 청산 작업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에 대한 재심 개시 여부가 관심이다. 서울고법은 2009년 9월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과 관련해 재심 청구를 받아들였다. 검찰이 이에 반발, 대법원에 재항고했으나 대법원은 아직 재심 개시 여부를 결론내리지 못했다.
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