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열기’ 펴낸 김인철 중앙대 건축학부 교수… “우리 전통 양식에서 현대적 건축 영감 얻죠”
입력 2011-01-20 17:37
서울 논현동 교보타워사거리 근처에 최근 새로운 명물이 생겼다. 동그란 빵 찍는 도구로 여기저기 찍어낸 밀가루 반죽처럼 콘크리트 건물 외벽이 ‘숭숭’ 뚫린 고층건물인데, 워낙 독창적이고 참신하게 생겨서인지 행인들이 발길을 멈추고 뚫어지게 쳐다보는 풍경이 종종 벌어지곤 한다.
‘어반 하이브(Urban Hive)’라는 이름의 이 건물은 김인철(64) 중앙대 건축학부 교수가 설계한 작품이다. 2009년 완공되던 해 서울시 건축대상을 수상하는 등 단박에 서울의 대표적인 건물로 주목을 끌었다. 최근 ‘공간열기(空間列記)’(동녘)라는 책을 펴낸 김 교수에게 어반 하우스의 설계 아이디어를 어디에서 얻었느냐고 묻자 “우리 전통건축 양식에서 얻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미래에서 볼 법한 세련된 건물이어서인지 대답이 언뜻 이해되지 않았다.
“건축이란 원래 안에 사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거든요. 어반 하우스에 사는 사람들에게 강남이라는 차가운 도시의 공간을 좀 더 색다르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네모반듯한 이미지의 강남을 또다시 네모난 창으로 보여주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고민하던 중에 우연히 경북 안동의 영산암이 떠올랐어요. 영산암은 규모도 작고 번듯한 건축물도 아니지만 안에 있는 사람에게 무한한 편안함을 안겨줍니다. 저 같은 경우 너무 편안해서 감동을 느꼈을 정도니까요. 그 기억을 떠올리며 생각했어요. ‘보는 대상이 같다면 대상을 보는 방법을 달리해보면 어떨까’하고요.”
자연 풍경이나 이웃과 어울리는 데 초점을 맞췄던 우리 전통건축의 가치를 따라 하다보니 그런 결과로 귀결됐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공간열기’에서 어반 하우스뿐만 아니라 자신이 직접 작업했던 작품 11개를 소개하고 그 건축물들을 우리의 전통건축과 어떻게 접목시켰는지를 풀어냈다.
예를 들면 중앙대 도서관을 보수 중축하는 설계를 맡았을 때 김 교수는 고산 윤선도가 보길도 부용동에 은거하며 지었던 세연정과 세연지 등을 떠올렸다. 그리고 여기에서 우리의 전통건축 양식이 외형을 보여주기보다는 밖을 내다보는 내부적 경관을 만드는 수단이었다는 점을 끄집어내고 이를 다시 도서관 설계에 적용했다.
‘공간열기’는 입문 개념 배치 형태 형식 용도 기능 공간 영역 장소 설계 졸업 등 모두 12장으로 분류해 건축을 소개하고 있는데, 무엇보다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전통건축의 가치와 소중함을 강조하고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한국인은 우리 건축물에서 살아야 가장 편안합니다. 그걸 무시하고 계속 서양건축 양식을 고수해선 안 되죠. 그렇다고 한옥에서 살자는 얘기가 아니고요. 우리 전통건축의 가치를 현대에 맞게 변형시키는 노력을 하자는 거지요.”
그는 “건축이란 일상생활 공간인 동시와 한 나라의 문화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라며 “이제 한국에 온 외국인에게 빌딩숲을 자랑하기 보단 우리의 멋을 살린 독창적인 건축물을 더 많이 보여줘야 할 때”라고 말했다.
김상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