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다” 기온 때문일까 느낌 때문일까… 추위의 과학 VS 추위의 심리학
입력 2011-01-20 17:15
어느 해 겨울이 이리 춥고 길었던지. 어제보다 오늘이 춥고, 오늘보다 다음주가 추울 것 같은 날이 지겹게 이어진다. 사람들은 목도리를 감고, 모피를 걸치고, 귀마개를 한 채 ‘머리가 깨질 것 같은 추위’ ‘태어나 처음 겪는 한파’라며 아우성친다.
서울 가양동의 주부 김영숙(39)씨는 “이렇게 매일, 쉬지 않고 계속 추운 건 태어나서 처음”이라고 했다. 서울 여의도 빌딩가의 10년차 주차관리요원 김연호(61)씨도 “춥다던 작년 겨울은 수월하게 넘어갔는데 올해는 지독하다. 기억나는 한 제일 추운 겨울”이라고 말했다. 서울에 50년 넘게 산 정술현(73)씨도 이 말에 동의했다. “지하철역에서 집까지 걸어오는 잠깐 동안 장갑 낀 손가락이 콕콕 아리더라. 기억을 못하는 건지, 추위를 덜 느꼈던 건지, 하여튼 옛날에 ‘추워 못 견디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는 것 같다.”
오리털, 거위털에서 밍크, 여우, 족제비, 발열내복까지. 한국인이 걸치고 다니는 방한복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난방은 집집마다 절절 끓고, 지하철과 버스의 히터는 더워서 걱정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춥다’를 연발한다. 이유는 둘 중 하나다. 정말 춥거나, 아니면 춥다고 느끼거나.
올 겨울은 정말 추운가?
통계로 보면 답은 똑 떨어지지 않는다. 어느 해와 비교하느냐에 따라 대답은 긍정도, 부정도 될 수 있다. 지난 20년을 돌이켜보면 올 겨울이 지독하게 춥다는 말은 설득력이 있다. 1월 1∼16일 서울 평균기온은 영하 6.7도. 1990∼2009년 1월 평균기온인 영하 1.7도보다 훨씬 낮다.
하지만 비교기간을 30년(1971∼2000)으로 늘리면 그림은 많이 달라진다. 이 기간 1월 평균기온은 영하 6.1도로 올해와 비슷하다. 시간을 좀더 뒤로 돌리면 되레 올 겨울은 ‘평균 이상’의 따뜻한 겨울이 돼버린다. 1961∼1990년 평균은 영하 7.1도로 올해보다 낮다.
이번에는 기상청에서 자료를 받아 100년 전과 50년 전, 30년 전 겨울의 최저·최고·평균기온과 하루 단위로 비교해봤다(12월 11일∼이듬해 1월 10일 기준). 최저기온이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진 날은 올해(11일)보다 1910년(17일)과 1980년(18일)이 6∼7일이나 더 많았다. 게다가 1980년 겨울에는 이런 한파가 12월 26일부터 1월 7일까지 12일이나 계속됐다. 평균기온이 영하에 머문 날도 1910년 28일, 1980년 30일로 올해(25일)와 비교해서 3∼5일 많았다. 개중 따뜻했던 1960년도 올 겨울과 큰 차이가 없었다. 1960년 겨울에 최저기온이 영하 10도 이하인 날은 올 겨울(11일)과 거의 같은 10일이었고, 평균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날은 25일로 올해와 똑같았다.
올 겨울은 추운가? 어느 전문가에게 물어도 “꽤 추운 겨울”이라는 데 이견은 없었다. 단, 조건이 붙었다. 유독 따뜻했던 지난 20년과 비교했을 때. 다시 말해 이런 추위가 유례없다는 뜻도, 사상 초유의 한파라는 의미도 아니다.
혹한의 추억
‘한강 링크서 이색경쟁-시민빙상대회 성황’(1961년 1월 9일, 동아일보)
‘국교(國校) 대항 빙상 한강서 열려’(1967년 1월 25일, 경향신문)
기사에는 대회장이 ‘한강 특설링크’라고 소개돼 있는데, 말이 특설링크이지 그냥 한강이 얼어 생긴 ‘천연’ 스케이트장이었다. 당시 빙상코치였던 임기준(86) 대한빙상경기연맹 고문은 “그때만 해도 얼음이 워낙 두껍게, 오래 얼어서 12월말부터 40일쯤은 한강에서 스케이트를 탈 수 있었다. 훈련도 한강에서, 대회도 한강에서 했다. 여의도 63빌딩과 한강대교 사이 부근이 애용됐다”고 말했다.
눈 쌓인 한강의 얼음벌판과 유빙이 떠다니는 서해. 한 세대가 기억할, 올 겨울의 시각적 충격이다. 하지만 30년 기준의 한 세대만 건너뛰면 얼어붙은 한강은 일상이었다. 서해에는 유빙이 떴고, 눈은 넘치도록 많았다. 한국인 최초로 동계올림픽에 출전했던 원로 스키선수 임경순(81)씨는 남산 스키장을 기억했다. “해방 직후 남산 조선신궁터 계단에 눈이 쌓이면 스키어들이 몰려들었다. 18살 무렵, 나도 남산에서 스키를 탔다.” 계단이 스키 슬로프가 될 만큼 눈이 충분히 쌓였다는 얘기다.
반세기 전, 얼어붙은 한강을 걸어서 건너는 일은 흔했다. 도강자가 너무 많아 서울시경은 아예 얼음이 두꺼운 곳에 백색기를, 얇은 곳에 적색기를 걸어놓았다(1965년 12월20일 경향신문). 안전을 위해서였다. 얼음 깨고 리어(잉어)를 잡는(1922년 1월 14일, 동아일보) 낚시꾼도 한강에는 널려 있었다. 서울의 겨울은 지금보다 훨씬 혹독했다.
‘춥다’의 과학
추위를 측정할 때 고려하는 건 기온과 바람, 두 가지다. 바람은 공기라는 보온막을 깨뜨려 열 손실률을 높이기 때문에 풍속이 높아지면 체감온도는 급격히 떨어진다. 바람이 불지 않을 때 영하 10도는 순수한 영하 10도. 풍속이 75㎞/h로 빨라지면 체감온도는 영하 24도까지 급락한다.
그러나 기온, 바람만으로 개인이 느끼는 추위를 알긴 어렵다. 추위는 객관이 아니라 개인의 주관적 체험이기 때문이다. 누가 얼마나 추운지는 성별, 나이, 몸무게 같은 개인 변수를 보태야 비로소 정확해진다. 강희철 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마른 사람이라도 근육량이 많아 신진대사가 활발한 타입이라면, 뚱뚱하고 대사량이 적은 이보다 추위를 덜 탈 수 있다. 근육량이 적은 여자가 남자보다 추위를 더 타는 것도, 식사 후 몸이 따뜻해지는 것도 대사량과 관련 있다”고 설명했다.
나이도 변수가 된다. 박상민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나이가 어릴수록 기초 대사량이 많아서 추위를 덜 느낀다”고 말했다. 어린이보다 성인이, 청년보다 노인이 추위를 더 느낀다는 뜻이다. 어린시절, 자리끼 어는 겨울밤을 보내고도 요즘이 더 춥다고 우기는 노인들 중 일부는 실제 지금 더 추울 수 있다.
객관적 조건(기온 바람)에 주관적 변수(나이 성별 몸무게 등)를 더하면, 이제 추위의 과학은 완성된 걸까.
왜 더 춥다고 느끼는가?
기상청 기후자료를 비교해보면, 1960년 겨울은 최저·최고·평균기온 모두 올해와 엇비슷했다. 얼추 비슷한 추위를 겪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추위에 대한 반응은 극적으로 달랐다. 올 한파는 연일 뉴스거리가 됐지만, 1961년 1월 동아일보를 보면 혹한 얘기가 한 줄도 없다. 대신 여럿 눈에 띄는 게 ‘포근한 날씨’ 소식이었다. 비슷한 기온에 1961년의 사람들이 ‘따뜻하다’고 느낀 반면, 50년 뒤 우리들은 ‘춥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과거 사람들이 더 뚱뚱했거나, 신진 대사량이 많았다고 믿을 근거는 없다. 되레 뚱뚱한 건 우리들이다.
강희철 교수는 “살도 더 많이 찌고 영양상태도 좋은 요즘 사람들이 과거보다 추위를 덜 느껴야 마땅하겠지만 현실은 반대”라고 말했다. 이유는 경험이다. “추위를 견디는 건 일종의 훈련이다. 과거에는 항상 추위에 노출돼 있었기 때문에 추위에 둔감해졌을 것이다. 훈련을 통해 추위에 익숙해졌다고도 말할 수 있다. 결국 춥다라는 감각을 결정하는 건 경험이다.”
김동완 전 기상통보관도 비슷한 진단을 했다. 그는 “요즘 사람들이 추위를 이기는 능력이 약해진 건 추위를 경험할 일이 드물어진 생활환경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실내외 온도차가 큰 것도 원인이다. 요즘 건물의 실내온도는 23∼24도를 오르내린다. 외부 기온이 영하 10도라면, 온도차는 무려 33∼34도. 건물밖에 나서면 추울 수밖에 없다. 김 전 통보관이 내놓은 해법이다.
“몸이 온도차에 적응하는 폭에는 한계가 있다. 실내온도를 낮춰 실내외 온도차를 줄이면 몸이 느끼는 부담이 적어진다. 또 예보를 100% 믿으면 추위도, 더위도 덜 느낀다. 만약 오늘 영하 17도라고 하면 그 추위를 이길 옷차림과 마음가짐으로 외출한다. 그러면 덜 춥다. 사람들이 춥다, 춥다 불평하는 건 준비를 안해서다. 날씨에 따라 삶을 바꾸는 것, 그건 과학이기도 하다.”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