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바 비리’ 유상봉의 남자들과 범죄 재구성… 10년 그림자 우씨 “유상봉이란 본명 10년만에 알았다”

입력 2011-01-20 18:08


[인터뷰] 범어유통 대표 우씨

세상이 다 아는 남자를 이들은 잘 모른다고 했다. 강희락 전 경찰청장 등 고위직 인사들을 등에 업고 일용직 노동자들의 식판에서 훔친 수익으로 한때는 부귀영화를 누린 ‘함바 로비스트’ 유상봉(65). 10년씩 그의 곁에 있던 측근들은 이미 유씨와 자신들 사이에 높은 벽을 쌓아 놓았다.

그의 오른팔이던 매제는 “로비와 무관하다”며 선을 그었고, 10년간 왼팔 노릇을 했던 최측근 우모(51)씨는 검찰 조사 과정에서 유씨의 본명을 처음 알았다고 했다. 유씨의 아들조차 20여년간 아버지를 만나지 않았다며 오히려 유씨와 고위 공직자들의 비리를 철저히 파헤쳐 달라고 강하게 요구했다.

“난 유상봉 회장의 바지사장 아닙니다”

지난 15일 부산 해운대구 20평 남짓한 낡은 아파트 문 사이로 고개를 내민 우씨의 첫마디였다. 거실에 앉아 있던 자녀 두 명이 이불로 얼굴을 가리는 게 문틈으로 보였다. 기자의 방문을 의식한 듯하다. 우씨는 이 말만 던지곤 황급히 문을 닫았다.

그 남자였다. ‘가족 경영 체제’를 유지했던 유씨를 10년간 보필했던 거의 유일한 외부인. 유씨의 전성기와 쇠퇴기를 지켜본 우씨는 범어유통 대표이고, 범어유통은 유씨가 실질적으로 운영한 급식업체다.

이틀 뒤 다시 찾아갔다. “가시죠.” 운동복에 슬리퍼를 신은 우씨는 가죽 서류가방을 들고 자신의 사무실로 안내했다. 10평이 안 돼 보이는 사무실 책장에는 ‘미래안푸드 현장식당 운영제안서’가 있었다. 유씨가 바지사장을 앉혀 운영했다는 경부유통도, 범어유통도 아닌 다른 업체였다. 그는 운영제안서를 펼쳐보였다.

“제가 건설현장 수십 곳에서 함바를 운영했다고 보도됐던데 전부 4곳이에요. 수십 곳 운영했으면 벌써 빌딩 샀겠죠. 빈털터리가 아니라.” 그의 주장은 이랬다.

범어유통이 지난해 10월 이름을 바꾼 업체가 ‘미래안푸드’다. 왜 회사명을 바꿨냐고 묻자 “사연이 길지 않겠느냐. 범어유통 말고 미래안푸드 얘기만 하자”며 미간을 찡그렸다. 업체명을 바꾼 시기에 검찰은 함바 게이트를 수사하고 있었다.

미래안푸드는 경남 양산경찰서 신축 공사(2009년 9월∼2010년 9월)와 인천도시개발공사의 숭의운동장 일대 구도심 재개발 현장(2009년 2월∼현재) 등에서 함바집을 운영했다. 모두 범어유통 시절 입찰로 따낸 사업장이다. 그는 “사업장 4곳 모두 유상봉 회장과 관련 있다”고 털어놓았다. 구체적인 내막을 묻자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가 양산경찰서 신축공사 현장에서 함바를 운영할 때 서장이던 손모(59) 총경은 지금 수감돼 있다. 2006년부터 1년간 건설업자에게 아파트 건설 민원을 해결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수차례 1억여원을 받아 지난해 12월 구속기소됐다.

우씨는 유씨가 벌인 함바업체마다 요직에 이름을 올렸다. 미래안푸드(전 범어유통) 대표, 경부유통 이사, 원진C&C 상무. 원진C&C는 유씨 아들 명의로 운영했고, 경부유통은 유씨 매제인 김모(58)씨가 바지사장이다. 유씨 최측근 중 거의 유일한 외부인인 그는 10여년 전 유씨와 손을 잡았다.

“검찰 조사하는데 그럽디다. 다들 유 회장 뒤에서 욕하는데 당신은 왜 안 하냐고. 그래도 제가 직원이고, 한때 모셨던 분인데 이러쿵저러쿵하는 건 맞지 않는 것 같아서….” 바지사장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도 그는 자신을 ‘유씨의 직원’으로 소개했다.

그는 검찰 수사가 시작될 무렵인 지난해 10월 유씨를 마지막으로 만났다고 한다. 그리고 한 달 뒤 검찰은 그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우씨는 수사 초기에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다. “내가 직원이기 때문에, 누가 벌을 준다면 벌 받아야죠.” 질문마다 짧게 대답하던 그는 처벌 여부에 관한 질문을 받곤 머뭇거리다 말이 꼬였다.

“정말 몰랐습니다. 유 회장의 본명이 유상봉인지. 검찰 조사 받으면서 알게 된 사실이에요.” 유씨는 최측근인 자신에게도 본명이 아닌 가명을 썼다고 한다. 유씨는 철저히 베일에 가려진 상태에서 로비 활동을 지속했다.

우씨는 2008년 7월 28일 유씨 대신 통영시청 시장실에서 문화단체 2곳에 후원금 1억원을 전달했다. 사진기자들이 ‘통 큰’ 후원자를 찍기 위해 몰려든 걸 알고 유씨가 그를 대신 보낸 것이다. 미래안푸드 사무실 한쪽에는 유씨의 가명(유상준)이 새겨진 통영시 감사패가 있었다.

후원금을 받은 통영국제음악제 관계자는 “문화에 관심 많은 기부자가 온다고 해 잔뜩 기대했는데 우 상무가 대리 참석해 김이 샜었다. 시장님께서 유 회장과 점심식사를 하려 했지만 상무가 대신 오는 바람에 식사도 취소됐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인터뷰 중간에 서울동부지검 관계자가 그에게 전화를 했다. 경부유통이 함바를 차렸던 건설사에 관한 질문이었다. “검찰도, 김 사장(경부유통 대표, 유씨 매제)도 자주 전화를 해 와요. 김 사장은 심정이 이루 말할 수 없다더군요.”

그는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했다. “가장이 잘해야 가족이 편안한데…. 딸이 두 명 있어요. 집 밖에서 이야기하잔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앞으론 다른 사업을 하려고요.” 10년간의 동행은 이렇게 끝이 났다. 유씨는 구속됐고, 그의 미래도 알 수 없다. 너무 늦은 후회다.

유씨 측근은 대부분 친인척이다. 모회사 격인 원진C&C를 중심으로 매제, 이종사촌 등이 자회사 격인 경부유통, 원진유통농업의 대표를 맡고 있다. 일종의 바지사장들이다. 이들은 유씨와의 직접적인 관련성을 부인하고 있다. 독자적 경영이었단 얘기.

그러나 함바 사기에 있어선 이들은 ‘한패’였다. 유씨 매제인 경부유통 대표 김씨는 2009년 5월 천안과 아산의 Y건설 함바 운영권을 주겠다고 속여 송모(57)씨에게 계약금 1억원을 뜯어냈다. 그러나 운영권은 송씨가 아닌 다른 업자에게 넘어갔다. 이중계약이었다.

범행은 대담했다. 김씨는 같은 해 7월 직원 박모(54)를 이용해 송씨에게 다시 접근했다. 경부유통 이사인 박씨는 자신을 범어유통 직원이라 속여 송씨에게 접근했고, 경기 용인시 성북동 K아파트 함바 운영권을 미끼로 다시 1억원을 가로챘다. 경부유통과 범어유통이 유씨가 운영하는 사실상 같은 업체임을 모르는 피해자를 두 번 속인 것이다.

범행은 치밀했다. 박씨는 피해자를 안심시키기 위해 경기도 김포시 사우동 한 법무법인 사무실에서 계약금을 받았다. 그러나 이 법무법인은 일반인에게 무료로 회의실을 제공하고 있었다. 법무법인 관계자는 “박씨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고 그들이 우리 회의실에 왔었다는 것도 처음 듣는다”고 했다.

김씨는 같은 해 10월에도 유 회장의 이종사촌(65)이 운영하는 경기 김포시 북변동 원진유통농업 사무실에서 또 다른 피해자에게 함바 운영권을 미끼로 1억1000만원을 가로챘다.

유씨의 사촌(59)도 함바 사기에 뛰어들었다. 2차 브로커인 그는 2009년 10월 원진C&C를 통해 인천 청라지구 함바 운영권을 주겠다고 속여 박모씨에게서 1억5000만원을 챙겼다. 원진C&C가 제시한 가격에서 2000만원을 얹은 금액이었다.

각종 소송에 휘말린 유씨의 매제, 사촌, 바지사장 등은 모두 사기 전과자가 됐다. 화려한 사기 행각으로 1억∼2억원씩 가로챈 이들의 자택은 의외로 대부분 소규모 다가구주택이었다. “청라지구 함바 한다고 떠들더니 한동안 안 보였어요. 알고 봤더니 사기 쳐서 감방에 가 있었더라고. 그리곤 이사 갔어.” 유씨의 사촌이 3, 4개월 전까지 거주했던 인천 심곡동 이웃주민의 말이다. 사촌의 우편함에는 미처 내지 못한 휴대전화 대금 용지만 남아 있었다.

유씨 아들 “함바 로비를 파헤쳐 달라”

유씨는 아들 명의로 회사(원진C&C)를 설립하고, 딸 명의로 된 통장으로 거래했다. 그러나 그것뿐이었다. 구치소에 수감된 유씨를 찾는 가족은 현재 없다. 가족 경영 체제를 유지했던 유씨에게 진짜 가족은 없는 것이다.

“이십 몇 년간 아버지를 만나지 않다가 일이 터졌어요. 아버지라 생각지도 않았는데… 밤 12시가 돼도 기자들이 전화를 하고, 사람들이 집에 찾아옵니다. 저, 요즘 집에도 못 들어가요. 동네 사람들이 얼마나 수군대는지 아십니까? 직장도 그만뒀어요. 선배들한테 부탁해서 번역 일 얻어다가 프리랜서로 일합니다. 돈이라도 있으면 벌써 외국 나갔을 거예요. 벌어 먹일 자식이 두 명입니다. (원진C&C가) 제 명의로 된 건지 저도 모르는데 다들 물어요. 어떻게 모를 수 있냐고요.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합니다. 그게 사건의 핵심은 아니지 않습니까? 권력의 핵심이, 누가 돈을 받았는지가 본질 아닙니까? 윗사람 눈치 보지 말고 밝혀 주세요.”

유씨 아들(43)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절규하듯 말했다. 아버지가 자기도 모르게 명의를 이용했다는 것이다. 그의 목소리에선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묻어났다. 하지만 2009년 9월 원진C&C가 1000만여원의 채무를 갚지 않아 현대캐피탈로부터 대여금 청구소송을 당했을 때 그에게도 이 사실이 통보됐을 것이다. 적어도 그때는 원진C&C가 자기 명의임을 알았을 것이다. 이 얘기를 꺼내자 그는 말을 바꿨다.

“제가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네, 제가 인감증명서를 줘서 설립된 회사입니다. 폐업 신고도 직접 했어요. 고모부(경부유통 대표)가 명의를 달래서 도와준다고 허락해줬습니다. 친척이 도와 달라고 하는데 누구든 도와줄 수 있는 거 아닙니까? 뭐가 이상하다는 거죠?”

이렇게 말하곤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유상봉의 가족도, 친척도, 측근도 그를 외면하느라 바쁘다. 이게 ‘함바 황제’의 결말이었다.

박유리 기자 nopim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