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 총! 차렷 총! 찔러!… 첫 여성 ROTC 후보생 군사훈련 국민일보 기자 동참 르포
입력 2011-01-19 21:39
19일 오전 6시. 경기도 성남 학생중앙군사학교에 새벽 찬 공기를 가르며 기상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얼마 전까지 캠퍼스를 누볐던 여대생 60명은 첫 여성 학군사관후보생(ROTC)이라는 낯선 이름으로 침구를 정리했다. 오전 6시45분 시베리아 한파가 더 차갑게 느껴지는 연병장에 모인 여성 후보생들은 남성 후보생들과 섞여 맨손체조를 시작했다. 군복바지에 흰 셔츠, 검은색 모자를 쓴 채 “하나 둘” 하는 구령소리는 벌써 익숙해 보였다. 지난 10일 학생중앙군사학교에 입교한 첫 여성 후보생들의 10일째 훈련은 그렇게 시작됐다.
이곳에서는 여성·남성 예비 장교 2400명이 방학을 맞아 함께 훈련을 받고 있다. ‘1일 후보생’으로 대학 졸업 후 조국을 지킬 여대생 후보생들의 고된 훈련에 동참했다.
맨손체조에 이어 연병장 2㎞를 뛰는 구보시간이 찾아왔다. 아침 칼바람이 몰아쳤다.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이 혹한의 날씨에 얼어붙어 속눈썹에 고드름이 생기는 줄도 몰랐다. 운동장과 생활관 둘레를 두 바퀴 도는 짧지 않은 거리였지만 단 한 명의 여자 후보생도 대열에서 뒤처지지 않았다.
오전 7시15분 기다리던 아침식사 시간이 시작됐다. 흰 밥에 버섯찌개, 소시지볶음, 김치, 김이 반찬으로 나왔다. 단출한 식단이었지만 밥알 한 톨, 김 한 장 남기는 이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짧은 자유시간을 이용해 세수를 하는 여성 후보생들도 있었다. 군복을 입은 채로 얼굴과 손발이 틀까봐 스킨과 로션을 정성스럽게 바르는 모습에서 이들이 여대생이라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내무반에 돌아와 군화를 닦고 청소를 마친 여성 후보생들은 오전 8시40분 다시 연병장에서 총검술 훈련을 시작했다. 12중대 6분대장을 맡고 있는 숙명여대 체육교육학과 조수민(21) 후보생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12중대 인원 보고, 총원 40명, 열외 0명, 현재원 40명, 보고 끝”이라고 외쳤다.
허리에 멘 군장의 무게가 몸을 압박했다. K-2 소총의 무게 3.91㎏에다 대검까지 끼우니 4.5㎏이나 됐다. 총을 들고 발을 맞춰 걷다보니 총 무게를 견디지 못한 팔이 절로 후들거렸다.
‘차렷 총’ 자세 훈련이 가장 먼저 실시됐다. 총을 만진 적이 없던 여성 후보생들이었지만 적의 얼굴로 가상한 쪽으로 대검을 겨누는 자세가 예사롭지 않았다. 소총을 몸 앞에 곧게 세우는 ‘앞에 총’ 자세, 왼발을 축으로 자유자재로 몸을 움직여야 하는 ‘좌·우로 돌아’와 ‘두 발 앞으로’ 자세 훈련이 계속됐다. 훈련 중간에 조교의 “10분간 휴식”이라는 지시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숙명여대 홍보관광학과 최지혜(20) 후보생은 “현대전에선 첨단무기가 중시된다고 하지만 총과 칼을 이용한 기본적인 전술부터 잘 배워놓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여성 후보생과 함께 총검술 훈련을 받은 충남대 식품공학과 최병택(20) 후보생은 “입교할 때 여성 후보생이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막상 같이 훈련해 보니 별다른 차이를 못 느끼겠다”며 “우리와 똑같은 훈련을 받아서인지 나날이 우정이 싹트는 것 같다”고 말했다.
총검술 훈련을 마친 여성 후보생들은 정오가 가까워서야 생활관으로 돌아와 오후에 있을 경계훈련을 위해 다시 군장을 싸기 시작했다. 고려대 체육교육학과 정지윤(20) 후보생은 “새로운 훈련을 하나하나 배울 때마다 “육군 보병 장교란 꿈에 한 발짝씩 다가가는 것 같아 가슴이 벅차다”고 했다. 고려대 화학생명공학과 김문경(20) 후보생은 “체력적으로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여성 ROTC 1기라는 자부심을 갖고 리더십을 키워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여성 후보생들은 남성 후보생과 같은 조건에서 제식훈련부터 40㎞ 행군까지 군사훈련 과정을 3주 동안 빠짐없이 받고 28일 퇴소한다. 사격, 경계, 구급법 등 군사 기초지식을 체득하고 필수과목도 이수한다.
숙명여대 영어영문학과 이미소 후보생(20)은 “앞으로 2년간 12주의 입영훈련과 총 175시간의 군사교육을 받고 임관하게 된다”며 “내가 배운 것을 후배 군인에게 전해줄 그날까지 열의를 갖고 즐겁게 훈련에 임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김수현 기자 siemp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