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미 찬양사역자, 남편과 사별 후 실종?… 日서 교회개척, 전도자로 부활
입력 2011-01-19 18:10
박정미(사진) 찬양사역자가 2005년 갑자기 종적을 감췄다. 그는 1985년 ‘주님 내게 오시면’ ‘주님 나를 부르셨으니’로 데뷔해 20여년간 각종 무대에 서 왔다. 소문이 잇따랐다. ‘이민 갔다’ ‘이혼하고 잠적했다’ 등 주로 안 좋은 소문이었다. 특히 남편과 사이가 안 좋아졌다는 말이 무성했다. 지난 18일 본보를 찾은 박씨는 “눈에 띄던 사람이 안 보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박씨는 일본 선교사로 돌아왔다. 그는 일본 센다이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가량 떨어진 시골 이와테에서 한국교회를 섬기고 있다. 오진실(54·여) 목사가 목회하는 아가페 교회와 아가페 영성원에서 그는 찬양이 아니라 전도에 집중하고 있다. 박씨가 2007년 일본에 간 것은 그해 사별한 남편 고원전 장로를 잊기 위해서였다. 94년 결혼한 박씨 부부는 금실이 좋기로 소문이 났다. 소문이 부부 문제에 집중됐던 것도 이런 이유다. 남편은 고전무용, 몸찬양, 모노드라마 등을 선보이던 찬양예술선교단을 이끌었다. 그러던 2005년 남편이 피곤하다고 했다. 간암이었다. 1년반 만에 세상을 떠났다.
“아빠처럼 자상한 남편이었어요. 사역자로 쓰시려면 저를 데려가시지 왜 남편을 데려가셨냐고 많이 울었어요.” 남편은 당시 신학을 공부했다.
박씨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두문불출하자 담임목사인 김정곤 목동성일침례교회 목사가 일본행을 추천했다. 박씨는 일본에 교회를 개척했다.
타국 삶이 쉽지만은 않았다. 가뜩이나 일본은 선교가 어려운 곳이다. 1년반을 버텼다. 하지만 재정이 바닥났다. 방세도 몇 달씩 못 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오 목사에게 전화해 어려움을 토로했다. 오 목사도 같은 시기에 남편을 잃었다. 그는 동역하자고 했다.
아가페 교회도 상황이 좋지만은 않다. 교회를 세운 지 3년 됐지만 성도가 겨우 5명이다. 그러나 박씨는 요즘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기뻐했다. 정기적으로 교회 출석은 안 해도 특별 행사 때는 20여명이 참석한다. 쌀 과일 등 먹을 것을 나누는 이도 많아졌다. 기도의 열매라고 말했다.
그는 또다른 열매를 놓고 기도 중이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3만3000여㎡ 땅에 찜질방과 노인시설을 세울 계획이다. “일본도 노인복지시설이 부족해요. 그래서 대개 노름에 빠져요. 이들의 여가를 책임지고 복음도 전할 수 있는 시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단기 선교팀 방문도 바라고 있다. 복음의 씨 뿌릴 자들이 급하다는 것이다. “저 대신 남편을 데려가신 하나님의 뜻이 여기에 있는 것 같아요. 일본 선교. 이렇게 써 주시니 감사할 뿐입니다.” (070-4038-5993).
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