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정진영] 김우중의 귀환

입력 2011-01-19 18:04


“청년실업 해소 위해 12년 만에 공개활동 하려는 그의 행보가 결실을 맺기 바란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마침내 전면에 나설 모양이다. 김 전 회장의 한 측근 인사는 최근 내게 이렇게 전했다.

“지난 17일 저녁 대우세계경영연구회 운영위원들이 모임을 갖고 향후 김 전 회장의 역할에 대해 논의했다. 사면 복권이 된 만큼 김 전 회장이 전면에 등장해도 되지 않느냐는 판단에서다. 이 자리에서 김 전 회장의 평소 생각을 구체화하기 위해 ‘글로벌청년사업(Global Young Bizman)’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이 사업은 국내 젊은이들을 해외에 취업시키고 그곳에서 창업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김 전 회장의 폭넓은 해외 인맥을 활용, 국내 청년실업 해소에 기여하는 것이 목적이다. 김 전 회장은 자문역을 맡으면서 젊은이들과 함께 외국 사업장을 찾는 등 사실상 사업을 주도한다. 방향이 정해진 만큼 최대한 속도를 내기로 했다.”

한마디로 김 전 회장이 조만간 공개 활동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전직 대우그룹 출신 3000여명이 회원인 대우세계경영연구회는 김 전 회장의 대외 창구다. 이 조직의 입장은 곧 김 전 회장의 뜻이다.

이 측근 인사가 추가로 밝힌 내용을 들어보면 사업 얼개는 다 짜여 있는 듯했다. 해외 취업에 관심 있는 청년실업자를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3개국 현지 사업장에서 1∼2년 현지화 적응을 하게 한 다음 자신에게 맞는 아이템으로 창업을 하도록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올 상반기에 시작, 성과가 좋으면 대상 국가를 확대해 나간다는 복안이다. 대우세계경영연구회는 이미 사단법인으로 전환된 상태라 사업 지원 준비는 거의 마무리됐다고 이 인사는 덧붙였다.

이 프로젝트가 계획대로 실현된다면 김 전 회장은 12년여 만에 세상에 얼굴을 내미는 셈이다. 1999년 대우그룹 몰락 이후 해외 유랑과 수감생활, 그리고 은둔과 칩거의 세월을 보내고 2011년 복귀하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세상의 평가가 곱지 않은 상황에서 새 출발을 하는 그의 발걸음은 무척 무거울 것 같다. 온갖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미래에 대한 막연함 역시 여전히 그를 짓누르고 있을지 모른다. 그의 나이 76세. 세상일에 욕심을 낼 연배가 아니고 새로운 일을 도모할 나이는 더 더욱 아니다. 그런 까닭에 나는 김 전 회장의 귀환을 색안경으로 보지 않는다. 그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인 ‘옛 대우 부활을 위한 노림수’는 믿지 않는다. 그에게는 그럴 능력도, 그만한 자금도, 그 정도의 기력도 없어 보인다.

한때 재계 순위 2위의 대그룹을 이끌었던 경력과 특히 옛 동구권 국가를 비롯해 중남미, 중국과 베트남, 중동 등 수십개국의 정상들이나 기업인들과 맺었던 네트워크를 활용하자는 것뿐이다. 남들보다 몇 걸음 앞서 93년부터 ‘세계경영’을 외치며 직접 해외로 나섰던 그의 경험을 우리 젊은이들이 맛보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대우를 망하게 한 ‘부실 경영’ 책임은 ‘수년간의 수감 생활’로 어느 정도 퉁칠 수 있다고 본다. 무엇보다 ‘경영 실패’를 탓하는 것 못지않게 ‘경륜 환원’을 끈질기게 요구하는 것이 그에게 더 무거운 멍에가 될 수도 있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우이길 바라지만 김 전 회장은 처음의 생각에서 한치도 벗어나면 안 된다. 만에 하나 순수한 ‘재능 기부’가 아니라 모종의 ‘암중모색’ 끼가 포착된다면 매서운 회초리가 가차없이 내리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가장 걱정되는 것은 정치권을 향한 ‘관심’이다. 집권 여당의 유력한 대선 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와는 꽤 우호적인 사이다. 특히 근래 보유 주식 가치 급등으로 수백억원의 재산가가 돼 국내 400대 부호에 이름을 올린 박지만씨의 오늘이 있기까지 김 전 회장이 상당한 역할을 한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김 전 회장은 정치 후각이 아주 예민하다. 대우그룹 회장 시절 대선 출마를 검토하기도 했다. 이런 그가 혹 정치지형의 변화를 기대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한몫’ 하겠다는 생각으로 이 프로젝트를 구상하지 않았기를 바란다. 가정하기 싫지만 만약 그렇다면 말년에 정말 ‘험한 꼴’을 볼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겠다.

정진영 카피리더 jy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