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추파열 이어 루게릭병 투병 속에도 전도하는 김정하 전도사
입력 2011-01-19 21:38
경기도 성남시 단대동 161-2. 상가건물 3층에 자리한 샬롬교회 김정하(53) 전도사를 만나기 위해 계단을 오르며 가슴이 먹먹해 왔다. ‘근위축성측색경화증’, 일명 루게릭병이 상당히 진전돼 몸이 마비된 김 전도사가 이 계단을 오르내릴 것을 생각하니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교회 입구에 다다르자 ‘누구든지 필요하면 퍼가세요’란 메모가 붙은 쌀 항아리가 눈에 띄었다.
새시 문을 열고 들어서자 지난해 본보 독자마당을 통해 처음 알려진 ‘구두 닦는 목회자’ 김 전도사와 최미희(49) 사모가 환한 얼굴로 맞아주었다. 안부를 묻자 이미 혀 근육이 마비돼 느릿느릿 어눌한 말투로 “하루하루 감사하며 잘 지내고 있다”는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지난해 초 경추파열로 주위의 도움을 받아 대수술을 했습니다. 이때 오른손이 마비됐습니다. 그러다 8월쯤 루게릭이란 진단이 내려졌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고 사는 것보다 죽음을 준비하고, 남은 삶을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정확한 병명을 알 수 있게 되어 감사한 일입니다. 더 나아가 장애인의 마음까지 품을 수 있게 해주심에 감사합니다.”
그는 목숨과 시간 싸움을 벌이지 않기로 했다. 김 전도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날까지 복음을 전하고 죽는 것이 소원이다. 그는 ‘자나 깨나 전도, 앉으나 서나 전도, 언제 어디서나 전도, 죽으나 사나 전도’란 표어를 노래 부르듯 읊조렸다. 지금은 병원에서도 휠체어를 타고 다니며 사탕을 붙인 전도지를 만나는 사람마다 전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병원에서 루게릭 환자 할아버지와 간호하는 할머니를 전도해 현재 교회에 열심히 나가고 있다. 믿지 않던 남동생도 형을 위해 기도해야겠다며 얼마 전부터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강함이 아니라 오히려 약함을 통해서도 역사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평신도 시절부터 시간과 생명 모든 재산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신학교 재학 중에 조상이 물려준 땅 3000평을 기증했으며 나머지 재산도 사후에는 모두 사회에 환원하기로 가족과 이미 결정했다.
20여년 전에는 시신도 이미 연세대 의학과 시체해부학과에 기증했으며 장기까지 기증했다.
그는 매순간 뜨겁게 살았다. 강원도 삼척의 시골 교회 관리집사일 때부터 화장실 청소 등 남들이 싫어하는 일을 도맡았다. 서울 장신대에 다니며 매주 1명 이상 전도했다. 제자의 전도 열정을 본 교수가 150만원의 이사비용을 들고 와서 그를 경기도 성남의 중형 교회로 추천했다. 교육전도사로 사역하며, 등록금을 분납해 가면서 신대원도 마쳤다.
6년간 기도한 끝에, 2006년 10월 성남시 단대동의 25평(82.64㎡) 상가건물에 맨손으로 교회를 개척했다. 그의 말대로 ‘전도사가 목회하는 개척교회, 상가교회, 세례도 못주고 축도도 못해주는 교회’였지만, 1년 52주 동안 54명을 전도했다. 가는 곳마다 전도지를 전했다. “전도는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며 너무도 즐겁고 신이 나는 일”이라고 말하는 그의 손엔 항상 전도지가 들려 있었다. 꿈속에서도 전도했고, 전도하다보면 배고픈 것, 시간 가는 것도 잊었다.
아내, 두 자녀와 함께 살 곳이 없어, 상가 옥상 가건물에 스티로폼을 깔고 한방에서 부대끼며 살았다. 겨울에는 두꺼운 오리털 잠바를 입고 잠을 청했고 여름에는 지붕이 열을 받아 사우나를 방불하는 정도의 찜통더위에 고생하면서도 상가 앞에서 구두를 닦아 번 돈으로 한국컴패션을 통해 7명의 가난한 나라 아이들을 후원하고 있다. 과부, 홀아비, 실직자, 알코올 중독자, 깨어진 가정, 조손가정 등 특수사역을 하며 3000여명이 회원인 인터넷 기독카페 구름과불기둥(cafe.daum.net/cfck)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잠시도 쉬지 않고 열정적으로 개척교회 목회를 했다. 그러다 지난해 여름 루게릭병이란 진단을 받았다.
처음엔 손이 약간 마른다는 생각, 다리에 힘이 없는 정도였다. 그러나 의사의 말대로 병은 빨리 진행되었다. 손가락이 모두 마비됐다. 젓가락질, 단추 잠그는 일, 세수, 바지 지퍼 내리고 올리는 일, 모두 아내의 도움을 받아야했다. 김 전도사가 목회를 시작한 후 간호사로 생계를 도맡았던 최 사모는 남편 수발을 위해 직장도 그만두었다. 최 사모는 거의 24시간 남편의 곁에 붙어 있어야 한다. 바로 생활고에 부닥쳤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김 전도사 소식을 전해들은 이웃교회 성도, 이름도 알지 못하는 기독인, 한국컴패션 등에서 도움을 주고 있다.
살아오면서 익사, 연탄가스 중독, 전기감전, 폐결핵, 교통사고 등 7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 지금은 하루하루 죽어가는 자신을 고스란히 느끼며 살아야하는 루게릭병 환자임에도 언젠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되었을 때, 그가 하고 싶은 말은 ‘오직 감사’라고 고백했다.
그는 “벌써 죽었을 목숨이 하나님 은혜로 지금까지 덤으로 살고 있다”며 전도자의 사명을 맡겨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김 전도사는 오는 10월 예장 통합에서 목사 안수를 받는다. 서울장신대를 졸업한 그는 4수 끝에 목사고시에 합격했다. “목사가 되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영혼 구원이 본질이지요. 목사가 된 이후에도 과거와 동일하게 전도할 것입니다. 그것만이 오직 나의 사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현재 집필 중인 간증집이 출간되면 전국 개척교회와 한국컴패션의 어린이 후원을 위해 전액을 사용할 계획이다.
한국 교회에는 김 전도사와 같이 모든 여건을 뛰어넘어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다가가는 선한 목자들이 많다. 질병과 환경적 고난에도 불구하고 일사각오로 복음을 전하는 김 전도사와 샬롬교회. 그 ‘작은 곳’에서 한국교회의 희망을 보았다.
성남=최영경 기자, 신재범 인턴기자 yk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