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선 약사의 미아리 서신] 내 삶을 바꿔 놓은 선배와의 짧은 통화
입력 2011-01-19 17:56
온 세상이 얼어버렸습니다.
동파 피해는 없으셨는지요. 저희 약국은 화장실 수도가 얼어버려 부지런히 이웃집으로 뛰어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으나 그리 크지는 않았습니다.
얼마 전 강원도 나들이를 할 일이 있어 잠시 다녀왔습니다.
국도변에서 쉽게 만나게 되는 구제역 차량 소독시설들, 그리고 눈만 빼꼼히 드러낸 채 칼바람에 몸을 맡기고 단속을 하고 있는 사람들. 차창에 뿌려진 소독약이 얼어버려 운전에 불편함을 준다고 불평인 사람들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실제로 그 상황이 되어 보니 정말 불편했습니다. 그렇다고 그 불편함이 제 몸의 온 신경을 거느릴 정도로 강하지는 않았답니다. 그런 불편한 마음을 추스르는 빠른 길은 따스해지는 것이랍니다.
약국에서 일을 할 때나 세상에서 여러 사람과 교유할 때 제 심장 깊은 데서 나오는 진심을 섞어 가는 것이 정말 따스해지는 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미아리집창촌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때로는 눈물, 때로는 웃음을 나누며 살아온 지 10년이 넘어 갑니다.
연어가 가지고 있는 귀소 본능이 제게도 있어 어려웠던 30대를 보내다 고향인 이곳으로 들어와 팍팍한 일상을 살아냈습니다. 그저 그런 일상 속에서 아무런 감동도 없이, 기쁨도 없이 살아가던 중에 한 선배 언니의 짧은 통화가 제 삶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언니는 외국인노동자 상담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외국인노동자 친구들이 몇 명 있는데 보약을 만들어 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지요. 물론 선배의 외국인노동자 친구들은 낯선 한국 땅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형편이 여의치 않아 약값 주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는 선배 언니가 참 힘겨울 거라는 생각과 함께 선뜻 그러겠노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처음엔 한두 사람인 줄 알았는데 하다 보니 열 사람 가까이 이르렀습니다.
음식과 기후가 맞지 않았기에 보약이 잘 들을 수 있을까 걱정을 하면서 괜한 일을 한 게 아닌가 하는 후회도 했었답니다. 한 달 두 달 지나면서 그 외국인 노동자들은 제가 만들어준 약을 복용한 뒤 몸이 너무 좋아졌다면서 정말 감사하다고, 익숙하지 않은 우리말로 더듬더듬 설명하는 모습에서 괜스레 눈물이 났습니다. 그들은 그러면서 그간 너무 추웠던 한국의 겨울이 이제는 더 이상 춥지 않다고 했습니다. 특히 동남아 출신 외국인노동자들은 한국의 겨울이 얼마나 추웠겠습니까.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들지 못한다던 외국인 친구는 술을 먹으면 약 효과가 떨어진다고 제가 이야기를 했더니 술을 안 마시기 위해 엄청 노력하였습니다. 약을 성실하게 먹기 위해 술 한 방울도 안 먹었노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친구에게 정말 잘했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저는 감사했습니다.
거의 1년 동안 외국인 친구들을 즐겁게 만나 건강 상담을 하며 좋은 약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저는 행복했습니다. 저의 작은 섬김이 다른 이들에게 큰 기쁨이 되었고, 다시 그 기쁨은 아주 큰 즐거움과 축복이 되어 저에게 돌아왔습니다. 몰랐습니다. 그렇게 부메랑처럼 돌아오는 축복이 있는 줄을.
남을 섬기고 살피는 일은 제 몫이 아니라고 생각했었지요. 그 당시 궁핍한 삶 속에서 몇 만원의 지출조차 자유롭지 못했기에 오히려 제가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왜 하나님 아버지는 저를 외면하냐고, 왜 이렇게 버려 두냐고 하염없이 원망도 했었습니다. 도대체 제 고통은 어디가 끝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해맑게 웃으면서 ‘이미선 선생님 고맙습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그 외국인 친구들은 제가 팍팍했던 삶 가운데 만난 보혜사 성령님이셨습니다. 불평, 불만 그리고 교만으로 가득 찼던 저를 하나님 아버지께로 이끌어 주셨던 보혜사 성령님을 저는 지금도 이 집창촌에서 매일 만나고 있습니다.
스쳐 지나는 삶의 조각에서 저를 기다리고 계실 보혜사 성령님을 위한 열린 마음과 따스한 손길을 지닌 채 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