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밥차’ 봉사 6년 탤런트 이일화 “받는 기쁨 보다 주는 기쁨이 더 크죠”

입력 2011-01-19 14:11


“지금은 자격이 없어요. 지난해 연말부터 소외계층의 급식을 해결해주는 ‘사랑의 밥차’ 봉사활동에 나가지 못하고 있어요.”

연극배우 이일화(40)씨에게 인터뷰 요청을 했더니 연신 죄송하다고 했다. 이달 말까지 서울 명륜동 1가 미마지아트센터 눈빛극장(극단 미연)에서 연극 ‘달님은 이쁘기도 하셔라’ 무대에 서기 때문이란다. 지난 16일 오후 3시, 공연장을 찾았다.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진 강추위였지만 280여명을 수용하는 소극장은 만원이었다. 어린이부터 청소년, 20대 연인, 중년 아줌마와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한 할머니, 40∼50대 남성들의 모습도 간간이 보였다.

연극 공연하느라 ‘사랑의 밥차’ 도중 하자

2시간10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금방 지나갔다. 등장인물은 극중 어머니 히구치 다키(박승태 분), 큰딸 야스코(조선주), 막내 구니코(신혜정) 가족과 이웃 이나봐 고(트리플캐스팅 이일화·박호석·정나온), 반딧불꽃(이연희·박효주), 나카노 야에(노현희) 등 6명이다.

연극의 주인공은 일본의 여류소설가 히구치 이치요(야스코)다. 1872년 도쿄에서 태어난 히구치는 9세 때 이미 ‘일생을 평범하게 보내고 싶지 않다’고 일기에 쓸 정도로 범상치 않았다.

히구치는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으로 17세에 어머니와 여동생을 부양하는 소녀가장이 된다. 삯바느질, 남의 집 빨래, 가내수공업, 유곽에 나가는 여자들이 손님에게 보내는 편지 대필, 술집 간판 써주기 등으로 받은 돈으로 겨우 살아간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도와달라는 이웃의 손을 뿌리치지 못하는 철없는 여인이다.

온갖 고생을 하던 히구치는 마침내 아사히신문 연재 소설가 나카라이 도수이를 찾아가 소설지도를 받는다. 나카라이의 도움을 받은 히구치는 이듬해부터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 ‘섣달그믐’ ‘키재기’ ‘흐린 강’ 등을 발표해 문단의 총아로 떠오른다. 그러나 1896년 봄부터 건강이 극도로 나빠진다. 그해 11월 23일 그녀는 24세의 나이에 악성 폐결핵으로 요절하고 만다. 연극에는 나오지 않지만 히구치는 한국의 신사임당처럼 위인이 된다. 2004년 11월, 5000엔짜리 지폐의 주인공으로 화려하게 부활한다.

연극은 이나봐 고 등 6명의 인물이 서로를 원망하고 화해하며 살아가는 줄거리다. 얽히고설킨 삶을 풀어나가는 것은 서로에게 겨눈 원한의 화살을 거두어야 한다는 메시지.

여고생 모델서 SBS 2기 탤런트로 데뷔

이씨는 이 연극을 통해 자신의 삶과 가족이라는 존재의 소중함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부산의 가난한 동네에서 태어난 이씨는 여고 2학년 때 전국 사진촬영대회에 우연히 참가했다가 최우수상을 받아 CF모델이 됐다. 돈을 벌기 위해 서울에 온 그는 1991년 SBS 탤런트 공채 2기로 데뷔했다.

이후 드라마와 CF를 오가던 이씨는 95년 가수 강인원씨와 결혼했으나 1년 만에 파경을 맞았다. 99년 한때 방송 활동을 중단하고 호주로 이민을 떠났다. 한 번 꺾어진 꽃이 다시 피기 어려운 것처럼 그녀의 삶도 그랬다.

그러나 이대로 이름 없이 사라질 순 없었다. 더욱이 자신이 뿌린 허물을 딸에게 대물림하고 싶지 않았다. 주변의 도움으로 브라운관으로 돌아와 연기에 몰입했다. ‘바람의 아들’ ‘아씨’ ‘야인시대’ ‘서동요’ ‘별난 남자 별난 여자’ 등에 출연하며 명예 회복에 나섰다. 지난해엔 ‘황금 물고기’ ‘산부인과’ 등에서도 탄탄한 연기력을 보여줬다. 연극 무대에도 섰다. ‘굿닥터’ ‘아가씨와 건달들’ ‘사랑의 기적’ ‘연인들의 유토피아’ ‘헬렌켈러’ 등에 출연했다. 이밖에 ‘그리움엔 이유가 없다’ ‘로맨틱 아일랜드’ ‘반두비’ 등의 영화도 찍었다.

6년 전부터 사랑의 밥차 활동에도 동참하고 있다. 가난한 이웃을 위해 캄보디아와 네팔에도 다녀왔다. 특히 캄보디아에서는 지뢰를 밟아 다리를 잃은 장애인들을 부축하면서 되레 더 많은 것을 얻었다고 했다. 받는 기쁨보다 주는 기쁨이 더 크다는 것을 말이다.

고 옥한흠 목사 제자훈련 받고 제2의 인생

무엇이 그녀를 강한 여자로 만들었을까. 하나님이 준 거룩한 모성이다. 딸 민아(12)가 행복의 나무로 자라게 해줘야 한다는 절박함이었다. 그녀는 절망의 순간, 서울 서초동 사랑의교회(오정현 목사)에서 고 옥한흠 목사를 만났다. 옥 목사의 가르침은 이씨를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게 했다.

“2002년 방송 복귀하면서부터 제대로 믿기 시작했어요. 한 단계 성숙해졌다고 할까요. 저와 같이 상처받고 아픔이 있는 이들을 돕기 위해 한성디지털대학에서 사회복지학도 공부했어요.”

이씨는 공허한 욕심을 버리고 배움의 길에 몰입했다. 왜 사랑하는 사람이 더 큰 상처를 남기는지, 어떻게 하면 그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가에 대해 답을 얻기 위해 기도하고 답을 구했다.

“상처가 없는 건 아닙니다. 누구나 상처를 입습니다. 그래서인지 제 귓가엔 온갖 신음소리가 쉬지 않고 들려옵니다. 이 신음소리는 무너져 가는 가정과 사회 속에서 수많은 영혼이 아픔을 호소하며 흐느끼는 소리입니다.”

아들 못 낳아 구박받은 어머니 구원

재작년 아버지에 이어 지난해에는 아들을 낳지 못해 온갖 서러움을 받고 살아 온 어머니를 교회로 인도했다. 어머니는 젊은 시절, 대를 이을 자식을 달라고 절에 가서 수없이 빌었던 불자였다. 집안 어른의 구박을 이기다 못해 몇 번인가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었다. 이와 같은 모진 고통을 당하고도 염주를 놓지 않은 분이었다.

그러던 어머니가 2년 전 대상포진에 걸려 병원을 전전하면서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랑의교회 김은수 목사의 치유기도를 받고 감쪽같이 병 고침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씨에겐 어찌 보면 참, 소박하다고 할 만한 꿈이 있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의 사연을 들어주고 그들의 상한 맘을 위로해 줄 수 있는 라디오방송 DJ가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다음 달부터 서울 방배동 크리스천치유상담원(원장 정태기)에서 전문가 과정도 이수할 계획이다.

“돌아보면 지난 40년 세월은 수많은 분들의 은혜와 주님의 치유 없이는 단 한시도 살 수 없었던 인생이었습니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제가 받은 크나 큰 축복을 돌려드리며 살고 싶어요.”

글 윤중식 기자·사진 홍해인 기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