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수지 (19) 장상 총리후보 낙마시킨 ‘땅투기’의 진실

입력 2011-01-19 17:42


호스피스를 하다 보면 ‘어떻게 죽을 것인가’뿐 아니라 ‘어떻게 나이 들어 갈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잘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보람 있고 의미 있는 삶을 말한다. 즉 나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삶이다. 젊어서는 자신 또는 가족만을 위해 살았지만 노후에는 남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이 ‘웰 에이징’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어떻게 나이 들어 갈 것인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그 중 하나가 ‘호스피스 센터’와 ‘요양원’ 그리고 ‘정신사회재활센터’를 건립해 그곳에서 환자들과 함께 생활하며 늙어가는 것이었다. 이를 구체적으로 계획한 것은 1988년이었다. 당시 이화여대 학생처 차장이었던 나는 밤낮으로 데모를 하는 학생들과 최루탄 냄새로 인해 심신이 몹시 힘들고 지쳐 있었다. 그때 같은 봉사모임 멤버였던 ‘초강회’ 교수들이 나를 위로해 준다고 찾아와 함께 경기도 장흥으로 점심식사를 하러 간 일이 있었다. 모처럼 서울 근교에서 맑은 공기를 쐬며 식사를 하자 심신이 회복되는 듯했다.

“우리, 퇴직 후 이런 곳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살면 좋겠네요.”

“그래요. 이렇게 공기 좋은 곳에 복지센터를 짓고 전공 영역을 살려 봉사하며 함께 살면 좋을 것 같아요.”

나의 제안에 다들 좋다고 찬성했다. 당시 이동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그 부근에서 고아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얼마 전 고아원이 있는 자리가 관광지로 바뀔 계획이 세워져 다른 곳으로 옮길 것에 대비해 여러 곳을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이왕 나온 김에 우리 함께 가서 땅을 좀 봅시다.”

우리는 이 교수를 따라 땅을 보러 다니던 중 마음에 쏙 드는 곳을 발견했다. 산으로 둘러싸이고 앞에 작은 계곡물이 흐르는 부지였다.

“이런 곳에 우리가 하려는 복지시설을 만들면 참 좋을 것 같네요.”

함께 갔던 교수들이 모두 마음에 들어 했지만 가격이 너무 비쌌다. 우리는 그저 구경만 하고 돌아왔다. 그런데 그해 11월 부동산 중개사한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주인이 돈이 급해서 땅을 아주 싼 값에 내놨다는 것이었다. 우리 교수 6명은 각각 3000만원씩 은행 융자를 받아 그 땅을 구입하기로 했다. 간호학, 보건학, 식품영양학, 사회학, 물리학, 그리고 기독교학을 전공한 장상 교수 등이 그때 멤버였다.

보건복지부에 복지재단 허가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런데 현금 5억원을 기탁하라고 했다. 우리에게 그런 돈이 있을 리가 없었다. 다른 정신과 의사 두 분이 가세를 하고 남편들까지 합치니 멤버는 모두 13명이 됐다.

이후 장상 교수가 인문대 학장, 대학원장을 거쳐 이화여대 총장이 되자 우리의 계획은 일단 보류됐다. 그러던 중 2002년 장 총장이 총리 후보로 임명됐다. 모 일간지 기자가 장 총장 집에서 인터뷰를 했다. 장 총장은 자신의 전 재산과 함께 우리가 산 땅에 대해 설명을 했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 신문에는 ‘장상 총리 후보자가 땅 투기를 했다’는 기사가 대서특필됐다. 청문회가 열렸다. 나는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가서 복지재단 신청 자료까지 보여주며 해명을 했지만 총리 인준은 결국 부결되고 말았다. 복지재단 설립을 제안했던 나로서는 얼마나 죄송한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더욱이 나를 비롯해서 거기 가담했던 다른 교수들까지 땅 투기 의혹을 받아야 했다. 결국 이를 견디다 못해 다른 분들은 중간에 포기하고 말았다.

정리=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