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바랜 튀니지 ‘재스민 혁명’… 과도 정부 요직 상당수 舊정부 인사가 차지

입력 2011-01-18 23:35

23년간의 독재정권 축출로 권력 공백이 생긴 튀니지에서 17일(현지시간) 과도정부가 출범했다. 하지만 구세력들이 신정부 핵심 요직을 계속 차지해 국민들의 반발 시위가 재연되면서 정국이 흔들리고 있다.

모하메드 간누치 총리는 총 23명으로 구성된 과도정부 내각 명단을 발표했다고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한 지네 엘 아비디네 벤 알리 전 대통령과 대립 관계였던 야당 인사 3명이 각각 지역개발장관, 고등교육장관, 보건장관에 내정됐다. 반정부 블로거로 이름을 떨친 슬림 아마무드가 아동청소년부 장관에 이름을 올리는 등 재야 및 노동계 인사들도 포함됐다.

주요 포스트는 벤 알리 전 대통령이 속한 집권 여당 인사들이 차지했다. 벤 알리 대통령의 측근 간누치 총리가 자리를 유지했고 국방·내무·재무·외무 등 주요 부처 장관들이 유임됐다. 따라서 “독재정권 인사들을 앉힌 가장무도회”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과도정부는 정치사범 석방과 인권단체인 ‘휴먼 라이츠 리그’의 활동 보장, 정보부 폐지 등 언론자유 확대 등 민주화 조치도 동시에 발표했다. 대선과 총선은 6개월 안에 치른다는 방침이다.

과도정부 구성안 발표 직후 국민들의 실망감과 분노가 터져 나왔다. 수도 튀니스 등 전역에서 반발 시위가 거세기 일어났고, 시위대들은 “꺼져”라고 구호를 외치며 구세력 일소를 촉구했다. 특히 조각(組閣) 발표 하루 만인 18일, 노조 출신 각료 지명자 3명이 동반 퇴진키로 한데 이어 야당 소속 보건장관도 입각 거부 의사를 밝혀 간누치 총리에게 치명타를 안겼다.

이런 가운데 ‘아랍권의 이멜다’로 불릴 정도로 사치와 권력남용이 심했던 벤 알리 전 대통령 부인 레일라 여사의 탐욕이 외신 등에 소개되면서 국민의 분노를 키우고 있다. 호화 승용차를 선호하는 그는 차량 50대를 보유하고 있고, 두바이 명품 쇼핑을 즐긴 것으로 유명했다. 그는 사우디로 망명하면서 금괴 1.5t(670억원 상당)을 자국 은행에서 빼내가는 등 마지막까지 탐욕을 과시했다. 영국 데일리메일은 국민들이 굶주리는 사이 벤 알리 가문은 은행 경영권 편법 취득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해 35억 파운드(약 6조2000억원)의 재산을 불렸다고 보도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