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민간인 출신 중앙공무원교육원 수장 윤은기 원장 “공무원 조직, 대응 속도 너무 느려”

입력 2011-01-18 21:52


경영컨설턴트 전문가가 진단한 공무원 조직은 느려 터졌고, 시야도 좁았다.

고위공무원일수록 국가 전체의 이익보다 부처 이기주의에 매몰돼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다.

공무원 교육훈련기관인 중앙공무원교육원의 61년 역사상 첫 민간인 출신 수장인 윤은기(60) 원장을 만나 그간의 소회를 들었다. 윤 원장은 시(時)테크 이론을 창시한 국내 대표적인 경영 컨설턴트 중 한 명으로 지난해 5월 원장으로 부임했다.

-원장으로 부임한 지 8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살펴본 공무원 조직을 민간 경영컨설턴트 입장에서 진단해 달라.

“공무원들의 부처 이기주의를 하루빨리 깨뜨려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민간기업들, 예를 들어 삼성과 LG, 포스코 등은 ‘전사적(全社的) 차원’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뭔가 목표를 정하면 정보와 기술, 인력을 모아 신속하게 치고 나간다. 하지만 정부는 부처 중심주의가 굉장히 강하다. 과장에서 국장, 실장으로 승진할수록 국가 전체적으로 보고 시야를 넓혀야 하는데 실제로는 자기 부처 중심으로 행동한다. 상하 간은 물론 좌우 영역 간 소통도 없다.”

-속도의 경제 시대다. 제품과 지식, 기술의 수명 주기가 점점 짧아진다. 기업들은 스피드 경영으로 대처하고 있는데 공무원 조직은 어떠한가.

“공무원 조직은 아직도 느리다. 공직자 중에는 ‘오히려 이게 바로 관료주의의 장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게 문제다. 세상이 너무 빠르게 바뀌다 보니 사고가 나게 될 수밖에 없는데 공직자들은 자신들이 브레이크 기능을 한다고 믿고 있다. 그런데 이는 오판이다. 시간은 돈이다. 상대방과의 시간싸움, 바로 스피드 경쟁이 치열하다. 이 때문에 공무원 교육에서 생각의 크기를 넓히고 사고의 속도를 빠르게 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학칙을 개정한 이유가 뭔가.

“학칙은 생명이다. ‘인재사관학교, 최고경영자(CEO) 양성소’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전 세계 기업들이 벤치마크로 삼는 제너럴일렉트릭(GE) 그로톤빌 연수원은 엄한 규정을 적용하고 있다. 반면 중앙공무원교육원에 입소한 공무원들은 상대적으로 느슨했다. 아예 학칙이 뭔지 알지 못하는 교육생이 태반이었다. 교육 중에 졸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머리가 아프다며 강의 도중 복도에 나가 있기도 한다. 지각하는 이들도 상당수다. 학칙에는 몇 번 지각하면 경고를 하도록 돼 있지만 사문화된 지 오래다. 국민 세금으로 교육을 받는 공무원들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때문에 이달 초 학칙을 개정했다.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했고, 학습태도가 불량한 경우 소속부처에 통보하도록 했다.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사람들이기 때문에 엄격한 윤리 준칙을 적용했다.”

-앞으로 교육원을 어떻게 개선해 나갈 건가.

“중앙공무원교육원의 본질적 가치를 살려나가겠다. 국가공무원들이 공통적으로 가져야 할 공직가치와 공직윤리, 공익적 사명감을 심어주는 데 노력하겠다. ‘중앙공무원교육원은 강사들의 무덤’이라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특히 고위공무원 교육과정을 가르치는 게 가장 힘들다고 한다. 실제로 내가 강의를 해 보니 반응도 없고, 박수도 안 치고, 도대체 이 사람들(고위공무원들)이 감성이 남아 있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고위공직자들의 엄숙주의, 권위주의, 자존심 등이 이유로 보인다. 내가 행정고시 패스한 사람인데 대학에 있었다면 지금쯤 대학원장이나 학장쯤 하는데 이렇게들 생각하니 강사들이 하찮게 보여 교육이 제대로 될 턱이 없다. 공무원도 인간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올해부터 5급 수습 사무관 교육을 확 바꾼다는데.

“5급 공채에 합격한 수습사무관들은 6개월간 교육원에서 교육을 받는다. 대한민국 최고의 강사진을 모셔다 놓고 강의를 듣고, 국가 발전상을 견학한다는 명목으로 대기업을 방문한다. 앞으로 장차관까지 오를 수 있는 사람들이니 상당한 대우를 받는다. 푹신한 의자에 앉아 간략한 브리핑을 듣고, 나올 때는 한두 개씩 선물도 받는다. 예우만 받는 교육이 돼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대기업 견학을 반으로 줄이고 중소기업에서 일주일간 현장 근무를 시키려고 한다. 말로만 친서민 정책이라고 읊어댈 게 아니라 우리 근로자나 외국인노동자들과 함께 땀 흘리고 먹고 자다 보면 친서민·친중소기업 정책이 무엇인지 체득하게 될 것으로 본다.”

황일송 기자 ils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