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수급 비상] 전기요금, 생산원가의 93.7%… 싼맛에 물쓰듯 쓴다

입력 2011-01-18 22:16


소비자들이 합리적인 에너지 선택을 할수록 전력 대란 가능성은 높아진다?

고유가와 전력난의 근본 원인이 왜곡된 에너지 정책 탓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최근 발생하고 있는 고유가와 최대전력수요 경신 행진은 서로 깊게 관련돼 있다. 정부가 기름값은 오르도록 내버려둔 채 전기요금만 싸게 유지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저렴한 전기 사용량이 급격히 늘면서 연일 최대전력수요 경신이 일어난 것이다.

이달 들어 국제 원유가격은 배럴당 90달러 초반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가장 비쌌던 2008년 140달러의 65% 수준이지만 국내 석유제품가격은 당시와 맞먹을 정도로 올랐다. 이는 정부가 수출 활성화를 위해 고환율 정책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환율이 오를수록 원자재 수입 비용이 늘어난다. 국제유가가 내려가도 국내에 반영될 여지가 크지 않은 구조다.

또 석유제품 원가보다 많은 세금을 부과하고 있지만 정작 정부는 국세의 20%에 달하는 유류세엔 손대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기름값을 잡기 위한 전방위 압박에 나서도 체감할 수 있을 정도의 가격이 내려갈 가능성은 없다.

반면 보편적 에너지인 전기요금은 싸다. 한국전력에 따르면 현재 전기요금은 원가의 93.7% 수준이다. 원가보다 낮은 요금 때문에 한전은 전기를 팔면 팔수록 손해가 커진다. 한전은 지난해 3분기까지 511억원 적자를 기록했고 4분기 적자를 합치면 적자폭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부는 민심 잡기와 물가 안정 차원에서 요금 동결을 선택해 왔다.

원가보다 싼 전기요금 탓에 에너지 소비 왜곡이 심하게 나타났다. 소비자들이 난방기구로 기름보일러 대신 전기온풍기와 전기히터 등 전기제품을 선호하면서 2004년 825만㎾였던 난방수요는 지난해 겨울엔 1675㎾로 배로 늘었다. 반면 난방유로 쓰이는 등유 소비량은 2002년보다 67%나 줄어들었다. 2009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소비전력량은 8833㎾h로 일본(7818㎾h)과 프랑스(7512㎾h), 영국(5607㎾h) 등 주요 선진국보다 높은 실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서민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전기요금 인상을 억제하고 있지만 정작 국민들은 비싼 기름값과 전력난으로 고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장기적으로 에너지 정책 방향의 조정이 필요하지만 단기적으로 에너지별 가격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경원대 김창섭 교수는 “유류세 중 탄력세 부분을 낮추고 전기요금에 포함된 전력산업기반기금을 높여 에너지가 제값을 받도록 하겠다는 시그널을 시장에 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도훈 기자 kinch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