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니지發 ‘시민 혁명’ 아프리카· 아랍권 확산
입력 2011-01-18 00:27
지네 엘 아비디네 벤 알리(74) 대통령의 23년 독재체제를 몰아낸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튀니지 국화가 재스민이어서 붙인 시위의 별칭) 불길이 아프리카 및 중동 아랍권 주변국으로 번지고 있다. 인근 국가 정부는 국민들의 거세지는 민주화 요구에 위기감을 느끼며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튀니지에선 여야가 통합 과도정부를 구성하는 등 서둘러 사태 정상화에 나섰지만 축출된 벤 알리 대통령 지지세력의 무력 도발로 혼란이 지속되고 있다.
아랍권 시민혁명 도미노 될까=아랍권에서 쿠데타가 아닌 민중 봉기로 혁명에 성공한 건 튀니지가 처음이다. 튀니지 시민혁명의 여파로 독재정치에 신음하는 아프리카 및 아랍권 국가 곳곳에서 반정부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벤 알리 대통령의 사우디아라비아 망명 소식이 전해진 직후 인근 국가에선 자국의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특히 이미 소요사태가 발생한 알제리에선 실업난과 주택문제를 항의해 지난 15일(현지시간) 분신을 시도한 30대 남성이 16일 숨졌다. 알제리에서는 지난 한 주 동안 분신자살이 4건이나 발생해 긴장감이 고조되는 상황이다. 이들의 분신자살은 재스민 혁명을 유발한 튀니지 청년 무함마드 부아지지의 분신자살과 닮은꼴이어서 알제리를 ‘제2의 튀니지’로 만들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고 외신은 전했다.
이집트에서도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30년 장기집권에 반대하며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17일 이집트 의회 인근에선 한 남자가 빈곤에 좌절하며 몸에 기름을 끼얹고 불을 붙였지만 의회 경비들이 신속히 불을 꺼 큰 화상을 입지 않았다. 예멘 수도 사나에선 1000여명의 대학생과 인권운동가들이 튀니지 시민혁명을 지지하며 가두행진을 벌이기도 했다. 이들은 33년째 집권하고 있는 알리 압둘라의 정권퇴진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요르단에서도 1000여명이 의회 앞에서 권위주의적 통치 종식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중동 국가들은 대책 마련에 나섰다. 시리아와 요르단 정부는 16일 물가인상을 억제하기 위한 선심성 조치를 내놓기도 했다. 튀니지 혁명이 고실업과 물가폭등 등 생계 문제에서 촉발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미 시사주간 타임은 튀니지 혁명을 ‘굶주림의 혁명(hunger revolution)’이라고 표현했다.
아랍연맹(AL)과 아프리카연합(AU)은 사태의 파장을 축소하기 위해 튀니지 국민들에게 자제를 촉구했다. 일부 아랍국은 서방 국가들이 튀니지 혁명을 아랍권 민주화 신호탄으로 여기는 것에 대해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이집트 정부는 아랍연맹이 서방 국가의 개입을 문제 삼는 성명을 채택하도록 제안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튀니지 과도정부 구성…혼란 지속=튀니지 지도부는 17일 여야 통합 과도정부를 구성하는 등 정국 정상화에 나섰다. 하지만 반대세력들의 저항으로 무력 충돌이 곳곳에서 발생하는 등 혼란은 계속되고 있다.
모하메트 간누치 총리는 이날 여야 통합정부 내각을 발표했다. 벤 알리 대통령과 가까운 집권 여당인 민주헌정연합(RCD)은 배제되고 진보민주당, 에타지드당, 자유와 노동연합 등 야당 인사들이 과도내각에 참여했다.
튀니지 경찰은 벤 알리 대통령의 처조카인 이메드 트라벨시를 비롯해 측근 23명을 비리 및 부정축재 혐의로 체포하는 등 과거 잔재 청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새 정부 구성에 반대하는 세력이 튀니지 곳곳에서 총격전을 유도하는 등 정국 불안정도 지속되는 상황이다. 벤 알리 대통령의 경호원들이 중심이 된 민병대는 수도 튀니스의 대통령궁 등 주요 기관 근처에서 총격전을 벌였다. 정부는 탱크와 군대를 동원해 진압에 나섰다. 도심이 봉쇄된 튀니스에선 약탈이 자행되고 있어 시민들은 식료품 부족과 신변 불안에 떨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