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흥우] 주커버그 만들기

입력 2011-01-17 18:21


참 대단한 청년이다. 서른도 안 된 나이에 세계 최고 부자 가운데 한 명이란 소릴 듣는다. 그가 보유한 주식 가치는 69억 달러(7조7000억원)에 이른다. 이건희 삼정전자 회장(약 9조원)에는 미치지 못하나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약 6조원)보다 많다. 더욱 놀라운 것은 재벌 2세도 아니면서 7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일궈낸 성과라는 사실이다. 미 시사주간 타임이 2010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마크 주커버그(27) 얘기다. 주커버그 자신도 7년 전 하버드대 재학 시절 기숙사에서 친구들과 함께 만든 ‘페이스북’이 오늘날 세계적으로 10억명 안팎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로 성장할 줄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창조적 아이디어 하나로 500억 달러(골드만삭스 평가)의 부가가치를 창출해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에 비견되는 성공신화의 아이콘이 됐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주 정례 라디오·인터넷 연설에서 그에 관한 얘기를 했다. 요지는 한국에서도 주커버그 같은 젊은이가 탄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지난해부터 1인 창조기업 육성책을 시행하고 있다. 지난해 11곳에 불과했던 SNS 및 모바일 응용프로그램(애플리케이션) 개발을 지원하는 모바일 앱 창작터를 올해 25곳으로 늘리고, 글로벌 앱 지원센터도 문을 열 예정이다. ‘1인 창조기업 비즈니스 센터’도 최근 13곳이 추가 지정됐다.

사실 미국보다 한발 앞서 SNS를 시작한 곳이 한국이다. 1999년 9월 서비스를 시작한 싸이월드는 국내에서 선풍을 일으켰다. 싸이월드는 국내에서의 여세를 몰아 2006년 무렵 미국, 일본, 독일, 대만 등에서도 서비스를 시작했다. 하지만 지난해 대부분의 해외 서비스를 중단했다. 지나친 현지화가 외려 글로벌 SNS로 성장하는 데 걸림돌이 됐다. 미국의 싸이월드와 독일의 싸이월드가 서로 호환되지 않은 탓이다. 출발은 우리가 먼저 했으나 지금 상황은 우리가 뒤처졌다. 국내에서도 페이스북과 트위터가 토종 SNS들을 제치고 앞서기 시작했다. 국내 전문가들은 그 주된 이유를 ‘개방의 차이’에서 찾는다. SNS는 세상과 소통하는 도구임에도 토종 SNS는 눈앞의 이익에 매몰돼 폐쇄적으로 운영해 왔다. 반면 페이스북은 일정 요건만 갖추면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을 제공했다. 이런 개방성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페이스북 가입자 수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주커버그는 당장의 수익보다 성장 가능성을 중시했다.

우리만의 특성을 갖추는 데도 실패했다. 페이스북은 인맥 넓히기 기능이 탁월하고, 트위터는 단순한 리트윗만으로도 여론 형성에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평을 받고 있다. 하지만 토종 SNS의 경우 딱히 “이거다” 하는 특징이 없다. 페이스북이라고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페이스북은 개인정보 유출에 취약하다. 세계 곳곳에서 이에 대한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그럴수록 주커버그는 사용자가 쉽게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게 계속해서 기능을 추가하며 약점을 보완하고 있다.

우리는 산업화엔 늦었지만 정보화는 빨랐다. 그러나 지금 같은 일률적인 주입식 교육과 적성에 관계없이 법대나 의대가 우수 학생을 빨아들이는 사회적 환경에선 주커버그가 나오기 어렵다. 얼마 전 한국교육개발원이 발표한 보고서 ‘한국 고교생의 대입 준비과정의 특징과 과제’에 따르면 적성보다 성적으로 대학이나 전공을 결정한 학생이 3명 가운데 한 명 이상이었다.

“새로운 시스템 창조.” 타임이 주커버그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이유다. 창조적 마인드는 창조적 교육에서 나온다. 한국식 교육은 레드 오션에 대응하는 인물을 ‘대량생산’하는 데 성공했는지 몰라도 블루 오션에 맞는 인물을 길러내는 데는 적합하지 않다. 메모리 분야에선 세계 최고라는 찬사를 들으면서도 비메모리 분야에선 아류국에 머물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판 주커버그 탄생은 교육에 달려 있다.

이흥우 인터넷뉴스부 선임기자 hw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