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정치권, 과학벨트 공약이행 촉구 이유는… 중원 민심 무서워
입력 2011-01-17 21:44
정치권이 새해 벽두부터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이하 과학벨트) 입지 선정 논란으로 뜨겁다. 과학벨트는 3조5487억원을 투입, 기초과학연구원과 대형 기초연구시설 등을 세우는 국책사업으로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지난 대선 때 충청권 유치를 약속한 사안이다. 하지만 지난해 6월 국회에서 세종시 수정안이 부결된 뒤 정부가 원점에서 입지를 선정하겠다고 밝히고 대구, 경북, 경기, 광주 등 다른 지자체가 유치전에 뛰어들면서 상황이 복잡해졌다.
◇들썩이는 정치권=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중요 변수로 작용할 수 있는 충청권 민심을 잡기 위해 여야 할 것 없이 분주한 모습이다.
특히 역대 대선에서 충청권은 사실상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해 왔다. 이런 분위기 탓인지 충청권은 ‘제2의 세종시 사태’ 운운하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염홍철 대전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이시종 충북지사와 홍재형 심대평 양승조 의원 등 지역 국회의원들은 17일 충북도청 대회의실에서 과학벨트 충청권 조성을 위한 추진협의회 발대식을 열었다.
내년 총선·대선에서 충청권 표를 의식한 민주당과 자유선진당은 발 빠르게 충청권 유치를 거들고 나섰다. 민주당은 지난 연말 변재일 의원이 충청권 유치를 골자로 발의한 ‘과학벨트법 개정안’을 당론 채택했다. 이 지역에 기반을 둔 선진당도 이회창 대표를 중심으로 공약 이행 촉구대회를 여는 등 연일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그러자 몸이 단 한나라당에서도 충청권 유치 공약을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서병수 최고위원은 1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왜 정부가 모호한 태도와 소극적인 침묵으로 일관해 혼란과 불신을 자초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과학벨트의 충청도 구축이라는 원칙만 확인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비공개 회의에서 안상수 대표와 정두언 박성효 최고위원 등이 과학벨트의 충청권 유치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19일 대전에서 열리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러한 입장을 밝히자는 의견도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홍준표 최고위원은 “정부와 당이 입장 조율도 하지 않은 채 대전에 내려갈 수 있느냐”며 제동을 걸었다. 당이 충청 유치 의사를 밝혔다가 정부가 거부하면 충청권 민심을 더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안 대표는 “책임질 테니 맡겨 달라”며 심재철 정책위의장에게 당·정·청 입장 조율을 주문했다. 정두언 최고의원도 18일 이와 관련한 전문가 토론회를 개최한다.
◇당·정·청, 갈등 재연 될까=여당 내부에선 ‘중원’으로 불리는 충청권 민심을 잃은 채 총선·대선을 치르는 것에 대한 부담이 크다. 한 최고위원은 “현재로선 충청권 유치가 불가피해 보인다”며 “어차피 해줄 것을 이렇게 충청권 민심을 자극하며 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세종시 파문 이후 나빠질 대로 나빠진 지역 민심을 더 이상 악화시켜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다른 최고위원은 “전국 공모를 할 경우 경쟁이 과열되면서 지역 간 갈등만 부추기는 등 후유증이 커질 수 있다”며 “하루빨리 정부가 중심을 잡고 (충청권 유치를)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여당 내 경북, 경기 지역 의원들 사이에선 지도부와 다른 미묘한 기류가 감지된다. 과학벨트가 자신들 지역에 유치되기를 내심 바라고 있다.
주무부처인 교육과학기술부는 교과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위원회’ 심의를 거쳐 최적 입지를 확정한다는 입장이다. 청와대도 지난해 세종시 수정안에 과학벨트를 포함시켰으나, 충청권이 원안을 고집해 무산된 만큼 과학벨트를 원점에서 검토하겠다는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이렇듯 여당 내부는 물론 당과 청와대 간 입장차가 크기 때문에 조율이 쉽게 되겠느냐는 회의론도 나온다.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 낙마 사태 이후 얼어붙은 당·청 관계에 새로운 뇌관으로 부각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