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변재운] 김영란 권익위원장에 거는 기대

입력 2011-01-17 18:16


EBS(교육방송)에서 본 것으로 기억되는데, 핀란드 교육현장을 취재하러 간 기자가 어느 학교 교장을 인터뷰하면서 그가 20년 가까이 교장을 하고 있다는 말에 물었다. “그렇게 오래 하면 주변에서 욕을 하지 않나요?” 교장이 무슨 뜬금없는 질문이냐는 듯 답변했다. “하겠다는 사람이 없으니 어쩌겠어요.”

서로 교장을 하려고 버둥대는 우리와 왜 이렇게 다를까. 우리나라에서는 교장뿐 아니라 소위 장(長) 자리를 놓고 벌이는 쟁탈전이 가히 필사적이다. 장관이나 청장 등 임명직은 물론이고, 도지사 시장 군수 등 선출직도 마찬가지다.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한다.

동기는 복합적일 것이다.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자기성취다. 우리나라가 유독 심하지만 사람들은 누구나 명예욕이 있기 마련이다. 달리 표현하면 자기 과시 욕구다. 사명감도 작용할 것 같다. 내가 맡아 조직을 잘 운영함으로써 주민과 국가에 기여한다는 자긍심을 가질 수 있다. 보수도 동기가 될 것이다. 아무래도 높은 자리에 오르면 보수가 많아질 테니까.

長에 수반되는 이권의 유혹

이게 다일까. 경찰청장까지 포함한 고위직들이 툭하면 부패에 연루돼 쇠고랑을 차는 작금의 현실을 보면 출세의 동기가 여기에만 머무르는 것 같지 않다. 즉 권한을 이용해 이권을 챙기는 부수적 효과 또한 무시못할 동기가 아닐까 싶다. 그런 것이 없다면 과연 군수가 대기업 과장급 월급을 받으려고 막대한 비용을 지출하며 그 힘든 선거 과정을 감내하고, 국세청장이나 경찰청장이 은행 지점장에도 못 미치는 월급을 받으려고 온갖 연줄 동원에다 거액의 뇌물을 상납하는 물심양면의 노고를 감수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동기는 순수했는데 막상 자리를 맡고 보니 생각이 달라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공직사회 부패는 우리의 슬픈 현실이다.

김영란 신임 국민권익위원장이 이달 초 취임식에서 “부패는 중차대한 사회적 질병으로 폐해가 너무 심각해 국가의 존망을 흔들어놓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귄익위는 이 만성적 질병에서 우리 사회를 지켜야 할 임무를 부여받은 기관”이라며 “그 길을 국민과 함께 찾아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 말대로 부패 바이러스는 전염성이 매우 강하다. 정도를 가려다가도 옆 사람이 하면 따라하게 된다. 나만 손해 보는 듯한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애써 ‘관행’이라는 단어로 행위를 합리화한다.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타인에게는 관대하라’는 게 성현 말씀이지만 대부분은 타인의 잘못에는 엄격한 반면 자신의 부패에는 그럴 만한 이유를 댄다. 그것도 안 되면 “다른 사람은 나보다 더하다”고 항변한다.

‘정직’과 ‘신뢰’가 얼마나 큰 사회적 자산인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부정직한 사회에서는 인간관계나 국가의 틀을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비용을 치르게 된다. 부정직한 사회를 정직한 사회로 바꿔놓으면 국가 예산의 효율성도 크게 높아진다. 하지만 정직한 사회는 공짜로 주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정치적 민주주의를 확립하는 데 많은 피를 흘렸듯 정직한 사회를 구축하는 데도 그만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핵심은 공직자 부패를 일소하는 것이다.

공직부패 척결에 앞장서주길

김 위원장에 기대를 걸고 싶다.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우선 부패 척결 의지가 강해 보인다. 공직사회 부패 척결이 권익위 역할 중 하나지만 취임사에서 전하는 메시지가 매우 분명하다. 그는 또 미래에 대한 부담이 없다. 청와대가 삼고초려 끝에 모셔왔다고 했듯 귄익위원장을 발판으로 더 높은 자리를 도모하지 않을 것 같다. 소신 있게 일할 수 있을 거란 얘기다. 살아온 행적으로 볼 때 현재나 미래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될 듯하다. 여성이라는 점은 약점이 아니라 강점이 될 수 있다.

김 위원장이 정직한 사회를 만드는 데 기념비적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 국민은 지금 박수칠 준비가 돼 있다.

변재운 논설위원 jwb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