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나누는 사람들] (4) 원희룡 한나라당 사무총장

입력 2011-01-17 21:27


10여년 전 장기기증 서약 이어 재산 환원 선언

지난 5일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재산 사회 환원 소식이 전해진 몇 시간 뒤, 한나라당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원희룡 의원은 트위터에 이런 글을 올렸다. “김 전 대통령의 선언을 환영합니다. 저도 재산을 상속시키지 않고 사회 환원하겠습니다. 부를 자발적으로 사회에 되돌리는 실천이 일파만파로 일어나는 대한민국을 기원합니다.” 앤드루 카네기의 말을 인용해 “부자가 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지만, 부자인 채로 죽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는 글도 올렸다.

그의 선언은 여러 면에서 주목받았다. 유난히 자기희생에 인색한 보수 진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그랬다. 진보 성향의 문화평론가 진중권 교수로부터는 “웬만하면 기부는 살아서 해라. 죽은 다음엔 아예 남은 게 없게”라는 신랄한 공격을 받기도 했다.

정치인에 대한 믿음보다는 불신이 넘치는 세상이기 때문일까. 꼭 진 교수가 아니더라도 그의 선언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지 않은 듯하다. 어떤 이들은 그의 재산 액수가 얼마 되지 않는다며 평가절하했다. 정치권에서는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지난 1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그를 만났다.

“김 전 대통령이 좋은 일을 했는데 반응이 너무 냉소적인 것 같았습니다. ‘공명(共鳴)’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유산 환원은 이전에 결정했고, 아내와도 얘기가 돼있었기 때문에 글을 올렸습니다. 유산 환원이라는 것이 죽음과 연결돼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조금은 다른 무게로 받아들여주는 것 같습니다.”

‘유산’이란 말은 죽어야 쓸 수 있는 단어다. 죽은 뒤의 재산 문제를 평상시에 생각하기란 쉽지 않다. 원 의원에게도 계기가 있었다. 2000년, 검사를 그만둔 뒤 변호사 생활을 거쳐 처음으로 국회의원 배지를 단 지 얼마 안 됐을 무렵이다. 두 살 아래 여동생이 목욕탕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뇌출혈이었다. 어린아이 주먹만큼 뇌를 떼어내는 수술까지 했지만 의사는 힘들다고 했다.

“실핏줄 하나가 터진 것 때문에 의식이 없어지고 생명 자체가 끊어질 수도 있구나. 참 허망하다 생각했습니다. 제발 살려달라고 기도하면서 내 중심으로 욕심 챙겼던 것, 동생한테 못해줬던 것, 모두 회개했죠. 그때 아버지가 ‘가진 것을 내려놔야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며 각막, 시신 등 장기기증 서약을 하시겠다고 해 형님과 나도 함께 했습니다.”

온 가족의 기도가 통했던 것일까. 그의 여동생은 석 달쯤 지나 의식을 되찾았고, 일부 마비 증세가 있지만 지금까지 잘 살고 있다.

그의 가족은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알려져 있다. 원 의원은 “나는 ‘나일롱 (크리스천)’이지만 부모님은 ‘(가진 것이) 신앙밖에 없다’고 하시는 분이고, 형님은 목사”라고 소개했다. 어려서부터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 인류를 위해 살아라 등등 ‘공공’을 우선시하는 문화 속에서 자랐다. 잠시 변호사 생활을 하는 동안 돈을 많이 벌긴 했지만 그게 삶에 있어 도전이 되진 않았다. 정계에 진출하면서 조금 갖고 있던 주식과 부동산을 모두 처분한 뒤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를 구입했다. 양육비와 생활비, 활동비 등을 쓰는 것 외에 불필요한 재산 증식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다고 했다. 그의 현재 재산신고액은 아파트 포함 9억원 정도. 2007년 12월 31일 다니고 있는 갈릴리교회에서 청빈한 기독교인으로서의 삶을 다짐하는 ‘갈릴리공동체서약’에도 동참했다.

“수도승처럼 살겠다는 건 아닙니다. 아내에게 항상 5000만명 중 2500만등 수준으로 살자고 말합니다. 나중에 국민연금 받으며 살자고. 그렇게 해도 우리는 워낙 배운 것도 있고 인생 체험도 있고 아는 사람들도 많아서 혜택을 많이 받지 않겠느냐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사회 혜택을 너무 많이 받은 사람입니다.”

이렇듯 오랜 시간을 거쳐 결정한 일이 즉흥적인 선언에 그치지 않도록 구체적인 실천 방법도 세웠다. 유산 환원 내용을 유산집행자 지정 방법과 함께 공증해 둠으로써 자동으로 집행될 수 있도록 미리 조치해두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살아 있는 동안에도 호강하고 사치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트위터를 통해 분명히 밝혔다.

한국 정치권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가진 자들의 도덕적 의무 실천)를 실천하는 정치인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이 ‘공정사회’를 이슈로 던지면서 이 용어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게 다뤄지지만, 정작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보여준 행태는 국민 눈높이를 충족시키기에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시중에서 ‘부자들 지들끼리 다 해 먹는다’는 얘기를 숱하게 들었습니다. (사회로부터) 혜택을 많이 본 사람은 많은 걸 요구받게 돼 있습니다. 기업 하는 사람은 부를 창출해 사회에 일자리를 제공하면서 환원해야 하고, 자녀 키우는 데 모든 투자를 하는 소시민들은 그 자체가 사회 환원입니다. 내 새끼만 키우는 것 같지만 그 자녀가 어떤 인재가 될지 모르기에 결국 사회를 위한 것이죠. 정치인, 공직자들은 그것만 갖고는 부족합니다. 일반 국민과 기업인에게는 너그러운 잣대를 들이대더라도 정치인들에게는 좀 더 높은 기준을 대는 것이 온당하지 않겠습니까.”

그는 소설 ‘상도’의 한 대목을 예로 들었다. 다리가 세 개 달린 솥단지를 통해 권력과 명예와 부는 함께 갈 수 없다는 얘기였다.

“정무직, 선출직으로 국가의 지도자가 될 정도의 사람들이라면 청빈을 추구할 생각을 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 질서와 사람들의 정신에 영향을 많이 주는 자리일수록 뚜렷한 가치관이 요구되고 그렇게 해줘야 합니다. 개인의 성취를 부정하는 건 배격해야겠지만, 성취를 이룬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모범도 보여주고 존경받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자기만 아는 탐욕적 이기심을 극복하고 공정한 경쟁 속에 개인의 성취를 추구하며 자발적인 나눔 문화가 생길 때 정신적인 풍요로움이 우리 사회에 생길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만드는 것이 제 정치의 노선이기도 합니다.”

한장희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