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장욱진 20주기 회고전… 부인·큰딸의 감회 “언행일치했던 분, 자식 사랑 지극했죠”
입력 2011-01-16 19:38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와 함께 한국 근·현대 화단을 대표하는 작가 장욱진(1917∼90)의 20주기를 회고하는 전시회가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 14일 오후 열린 회고전 오픈식에는 장 화백의 유족과 문화예술계 등 인사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 중 단연 주목받은 이는 장욱진미술문화재단 이사장과 이사를 각각 맡고 있는 장 화백의 부인 이순경(92)씨와 큰딸 경수(66)씨였다.
모녀는 “감사하다”는 말로 소감을 밝혔다. “세월이 엊그제 같은데 참 빠르고 아득해요. 벌써 20주기라니…. 곳곳에 흩어져 있던 작품을 오랜만에 만나니 마치 이산가족을 상봉하는 것 같아 가슴이 두근거려요.”
경수씨는 “우리 형제는 1남4녀로 내 위에 오빠가 한 명 있지만 아버지는 나를 무척 좋아하셨다. 늘 나와 어깨동무를 하고 다녔고 강가 등에 산책을 나가면 뭔가 골똘히 생각하면서 나란히 앉아 있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부인 이씨는 작업 시간 외에는 술 먹는 게 휴식이었던 남편, 그런 장 화백을 대신해 30년 넘게 서점을 운영하며 가정을 꾸려온 기억 때문인지 감회에 젖을 뿐 말은 없었다. 경수씨는 “‘문명으로 표기되는 서울이 싫다’며 시골 작업실(경기도 덕소)로 훌쩍 떠나버린 아버지가 이해되지 않은 때도 있었다”면서 “1990년 12월 27일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는 자식들을 불러 모아 ‘너희 아버지가 나에게 해줄 건 다 해줬다. 그러니 더 이상 술 얘기는 꺼내지도 말라’고 못 박으셨다”고 말했다.
이씨는 역사학자 이병도(1896∼1989)의 딸로 이장무 전 서울대 총장과 이건무 문화재청장의 고모다. 경수씨는 “아버지는 처가에서 홀대해 명절에도 세배를 안 갔다. 외가에는 7명이 박사였는데 자유인인 아버지와는 코드가 안 맞았다”고 기억했다.
지금도 정초가 되면 최경한 이만익 등 원로 작가들이 어머니에게 세배하러 온다고 밝힌 경수씨는 “69년작 ‘하얀집’ 속 아버지는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못해 숨어 있지만 73년작 ‘가족’ 속 아버지는 당당하다. 그림이 좀 팔리고 명성도 높아지면서 조금은 덜 미안했던 모양”이라고 설명했다.
“아버지 그림에 등장하는 아이를 두고 우리 자매들은 전부 자기라고 우겨요. 나는 틀림없이 나라고 생각하는데 동생들은 ‘헤어스타일을 봐라. 어디가 언니야’라고 반박해요. 그 대상이 누구든지 아버지는 언행이 일치하는 분이셨고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셨다는 겁니다.”
아버지가 남긴 작품을 경기도 양주시에 짓고 있는 장욱진미술관에 기증할 계획인 경순씨는 “작품이 대부분 조그만 그림이어서 작고 아담하고 경관이 좋은 미술관이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장 화백의 유화와 먹그림 등 70여점이 출품된 이번 전시는 2월 27일까지 계속된다.
글·사진=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