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감 온도 -40… 북극이 따로없다

입력 2011-01-17 00:44


전국이 꽁꽁 얼었다. 동장군(冬將軍)의 맹위로 부산은 96년 만에 가장 추운 날씨를 기록했다. 수도계량기 동파가 속출했다. 매서운 칼바람이 부는 거리는 한산했다. 병원은 감기환자로 붐볐다.

기상청은 16일 아침기온이 서울 영하 17.8도, 강원도 철원 영하 24.3도, 충북 제천 영하 23.2도, 강원도 춘천 영하 22.5도, 부산 영하 12.8도로 올 겨울 들어 가장 낮았다고 밝혔다. 서울은 2001년 1월 15일 영하 18.6도 이후 10년, 부산은 1915년 1월 13일 영하 14도 이후 96년 만의 최저기온이다. 경남 거제(영하 10.4도) 밀양(영하 15.8도) 창원(영하 13.1도)도 71년 관측 시작 이후 가장 추웠다. 강풍으로 강원도와 경기북부 일부 지역 체감온도는 영하 40도까지 떨어졌다.

서울에서만 2300건이 넘는 수도 계량기·수도관 동파 신고가 접수됐다. 서울 공덕동에 사는 직장인 최모(32)씨는 “한파로 보일러가 고장나 찬물을 가스레인지에 데워 겨우 머리만 감고 나왔다”고 말했다. 차량 고장도 급증했다. 삼성화재가 접수한 시동불량 신고 건수는 이날 오전 10만5000여건(출동 2만6500여건)으로 평소의 10배였다. 직장인 천모(37)씨는 “한파로 시동이 안 걸려 보험사 직원을 불렀는데 ‘비슷한 주문이 밀렸다’며 직원이 50분 만에 도착했다”고 말했다.

서해안과 제주도 등에는 폭설이 겹쳐 도로 곳곳이 통제됐다. 바람도 강해 제주∼목포, 제주∼완도 구간 모든 여객선 운항이 통제됐다. 경남 김해에서는 상수도관이 동파돼 도시 전체에 수돗물 공급이 중단됐다. 강원도 속초시 토왕성폭포에서 빙벽등반을 하던 등반객 2명이 추락해 1명이 숨졌고, 부산 우동 해운대해수욕장 공원에서는 노숙인 이모(53)씨가 동사했다.

도심거리는 활기를 잃었다. 주말이면 외국인 관광객과 젊은이로 가득했던 서울 명동 골목은 평소보다 절반가량 사람이 줄었다. 시민들은 두꺼운 외투와 귀마개, 목도리로 중무장하고 약속장소를 향해 잰걸음을 걸었다. 시민들이 추위를 피해 커피숍과 식당만 찾는 통에 잡화를 파는 노점상은 일을 포기했다. 겨울방학이나 관광객 특수를 기대했던 신촌과 이대·홍대 젊음의 거리도 사정은 비슷했다.

떡볶이 순대 김밥을 파는 노점상 특화거리인 서울 혜화동 창경궁로(종로4가~원남동사거리)도 주인 없는 점포가 대부분이었다. 한파로 창경궁을 찾는 관광객이 크게 줄어 그나마 장사를 시작한 곳도 개점휴업 상태였다. 오후 2시쯤 서울 인사동 거리도 중국인 관광객만 3~4명씩 돌아다닐 뿐 조용했다. 상점 주인들은 매장 문을 닫고 전기난로에 손을 쬐며 손님이 들어오기만 기다렸다.

거리에 물건을 늘어놓고 손님을 부르는 상인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인사동에서 호떡을 파는 김모씨는 “경기가 어려워 장사가 안 되는데 날씨마저 도와주지 않는다”며 “주말인데도 평일보다 오가는 사람이 적다”고 한숨을 쉬었다.

서울 영등포동 타임스퀘어나 삼성동 코엑스몰 등 복합쇼핑몰과 찜질방은 붐볐다. 직장인 김현지(28·여)씨는 “남자친구와 데이트하러 신촌에 갔다가 너무 추워 타임스퀘어로 발을 돌렸다”며 “영화를 보려 했지만 사람이 많아 커피만 마시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인사동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하는 이동준(30)씨는 “추위로 일본인 관광객이 외부 일정을 줄이고 실내관광 위주로 바꿨다”고 말했다. 서울 남영동 황토찜질방 김모 사장은 “이번 주말 손님이 엄청 늘었다”며 “밤을 보내려고 오는 손님도 많다”고 말했다.

감기환자도 넘쳤다. 서울 서계동 소화아동병원에는 주말에도 감기환자가 400여명 찾았다. 병원 관계자는 “최근 계속되는 강추위로 매일 감기환자가 300~400명씩 찾아온다”고 말했다.

추위는 오는 주말까지도 쉽사리 풀리지 않는다. 기상청은 17일 아침 서울 영하 16도, 강원도 철원 영하 21도, 대전 영하 14도, 부산 영하 7도 등 전국에 한파가 이어지겠다고 예보했다. 18∼23일 서울 아침기온은 영하 11까지 떨어지겠고 강원도 영서 지방은 영하 15도 안팎, 대전은 영하 9도로 전망했다. 기상청 관계자는 “추위는 19일쯤 다소 누그러지겠지만 주말까지 영하권 날씨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전웅빈 기자, 전국종합=강주화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