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고물가 폭탄… 재래시장을 가다] 값만 묻고 발 돌리며 “설 어떻게 쇠라고…”
입력 2011-01-16 19:57
싼 곳이 없다.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서민이 주로 찾는 재래시장 물가도 비상이 걸렸다. 생선 채소 과일 값이 폭등하고 기름값 등 원자재 가격이 크게 오른 탓이다.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물가 때문에 팔려는 상인이나 사려는 소비자 모두 애가 타기는 마찬가지다. 시장에서 만난 시민들은 “먹는 것을 포함해 생필품 값이 너무 올랐다”면서 “설 명절을 앞두고 걱정이 태산”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16일 서울 노량진수산시장에서는 영하 17도의 한파 속에 수산물 상자를 옮기는 상인들도, 비닐봉투를 든 고객들도 미끄러질까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시장에서는 흥정 소리만 요란할 뿐 정작 수산물을 사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상인 안숙자(72·여)씨는 “가격만 물어보고 발길을 돌리는 손님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영지수산 문갈단(53·여)씨는 “상인인 우리가 놀랄 정도로 가격이 올랐다”며 “지난해 새조개 1㎏에 1만원도 안 했는데 요즘엔 2만원이 넘는다”고 했다. 다른 상인은 “우리도 서민이라 비싼 생선 값만 묻고 사지 못하는 심정을 이해한다”고 전했다. 고등어 한 손을 집어 든 주부가 “뭐라도 더 달라”며 억지를 부렸고 주인은 마지못해 작은 생선 한 마리를 끼워 줬다.
서울 남대문시장에서는 값싼 물품들을 좌판에 펼쳐놓고 상인들이 목청껏 “골라, 골라”를 외쳐대는 익숙한 풍경이 보이지 않았다. 장사가 되지 않는 상인들은 삼삼오오 모여 난롯불을 쬐며 세상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곳에서 20년 넘게 여성옷을 파는 진모(53·여)씨는 “지난해 8만원 정도 하던 재킷을 14만원에 팔고 있다”며 “옛날 재래시장 가격만 생각하고 왔다가 가격표를 보고 깜짝 놀라 돌아가는 손님이 많다”고 말했다.
서울 평화시장에서 35년 동안 한복을 팔아온 강덕례(65·여)씨는 “2만원이면 들여올 수 있었던 한복 원단이 지금은 3만원을 넘는다”며 “보통 이맘때면 설빔을 사려는 손님이 와글와글했는데 지금은 한산하다”며 사정을 전했다. 강씨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도 한복가게 앞을 지나던 50대 주부는 가격만 묻고 발길을 돌렸다.
비싼 물가 탓에 소비 패턴도 달라졌다. 서울 청량리청과물도매시장에서 신고 배를 파는 한 상인은 “과일 값이 비싸 한 상자씩 사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1000원에 1개짜리 배를 낱개로 몇 개 사가는 것이 전부”라고 푸념했다.
값이 싸다는 생각에 재래시장이나 도매시장을 찾은 소비자들은 지갑을 열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서울 을지로6가 두산타워를 찾은 김신애(27·여)씨는 “마음에 드는 토끼털 점퍼가 30만원대인 걸 보고 놀랐다”며 “10만∼15만원을 예상하고 나왔던 내가 너무 순진했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남대문시장에서 만난 김인순(64·여)씨는 “먹을 것 값이 많이 올라 채소는 예전과 비교할 때 가격 차이가 엄청나다”면서 “발품을 팔아 시장을 돌다 값이 조금 괜찮다 싶은 걸 발견하면 중국산이더라”고 말했다.
이용상 김수현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