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르포] 끝모를 전세대란… 서민들 칼바람
입력 2011-01-16 21:50
끝이 안 보이는 전세대란이 ‘전세난민’을 양산하고 있다. 오는 5월 입주할 전셋집도 구하기 힘든 실정이다. 수요가 많은 20∼30평형대 전세 매물은 품절된 지 이미 오래다. 서민들에게 ‘전셋값을 잡겠다’는 정부 발표는 ‘현실을 모르는 소리’와 동의어다.
전세대란은 조금이라도 돈을 모아 집을 장만하려는 서민들, 신혼집을 못 구하고 있는 예비부부들, 전세값을 감당하기 힘든 데도 자녀 전학 문제로 이사 결정을 선뜻 못 내리는 가장들의 가슴을 멍들게 하고 있다. 전세 물량이 없어 월세로 살아야 하는 경우 집 장만의 꿈은 더욱 멀어진다.
지난 15일 서울 5개구(강남 송파 성북 은평 영등포) 공인중개사무소의 전·월세 동향을 점검한 결과 서울의 109㎡(33평형) 아파트 전셋값은 2년 전보다 4000만∼2억2000만원 뛰었다. 경기도 수원 안산 안양 과천 부천 광명 6개 시는 같은 평형대가 3000만~1억원 올랐다.
공인중개사무소 창에는 전세 시세표가 빼곡하게 붙어 있지만 서울과 수도권의 부동산 업자들은 “최근 전세계약을 체결한 적이 거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 신천동 부동산가이드 대표 박종하(52)씨는 16일 “지금은 전세 구하기 전쟁”이라고 잘라 말했다. 한 공인중개사는 전화를 받자마자 “오랜만에 나온 물건”이라며 “다른 부동산이 눈치 채기 전에 빨리 움직여야 한다”고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세대란은 서울 강남·강북, 뉴타운·비뉴타운, 수도권 등 지역구분 없이 확산되고 있다. 서울 반포동의 한 중개업자는 “2009년 초 1억9000만∼2억원 하던 전셋값이 지금은 4억원을 줘도 구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경기도 안양시 본오동 상록수부동산 조필숙 사장은 “전세 물량이 없어 평형대 별로 대기자가 3~4명 있다”고 말했다.
월세를 택하는 경우도 늘었다. 경기도 안산의 한 공인중개사는 “집주인들이 월세로 돌리는 경향이 많아 월세만 거래가 이뤄지는 형편”이라고 설명했다.
전세값이 싼 인근 지역으로 이사를 고민하는 사람도 많다. 서울 명일동에 사는 직장인 최모(48)씨는 “전셋값이 너무 올라 인근 경기도 하남시로 옮길까 생각 중”이라며 “그쪽 전셋값도 만만치 않은 데다 아이들 전학 문제가 가장 큰 걱정”이라고 힘없이 말했다.
전세대란은 서민들의 소박한 꿈도 앗아갔다. 2009년 3월 서울 문정동으로 집을 옮긴 이정인(33·여)씨는 “대출금을 상당히 갚아 올해부터 집 사는 준비를 하려 했는데 전셋값이 너무 올라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면서 “집 장만은 고사하고 집주인이 제시한 인상분을 맞추려면 다시 대출을 받아야 한다”고 한숨 쉬었다. 오는 6월 결혼을 앞둔 회사원 김성민(32)씨는 “20평형대 아파트를 찾아 한 달째 서울시내 공인중개사무소를 돌고 있지만 수확이 없다”고 말했다.
지난 13일 국민주택기금의 전세자금 대출 규모를 늘리고 소형·임대 주택 공급을 늘리겠다는 정부의 전·월세 대책에는 냉담한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은 “전세대책이라는 게 따로 있을 수 없고, 정말 내놓을 거는 다 내놨다”면서 “더 이상의 대책은 없다”고까지 했다.
서울 잠원동 한신부동산 유재환(39) 소장은 “대출을 늘리면 매매가와 전세가 모두 상승한다”고 말했다. 서울 정릉동의 한 중개사무소 소장은 “결국 가계 부채만 늘어날 것”이라며 “대출 받아 전세 구하라는 얘기냐”고 되물었다. 관련기사 3면
전웅빈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