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라운지-김명호] 또 도마 오른 美 ‘총기소지 권리’

입력 2011-01-16 18:33

지난주 미국 애리조나주 투산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으로 미국 내에서는 또다시 총기 소지 규제 여부가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하지만 총기 소유를 주장하는 쪽이나, 이를 규제하자는 쪽이나 결론에 대한 예상은 비슷하다. 총기 소지 규제를 못할 것이라는 것이다.

총기 정치학(Gun Politics)이란 말이 있다. 정치인과 총기 소지 옹호론자의 ‘끈끈한 사이’를 지칭하는 용어다. 미국에는 총기 소지를 주장하는 단체만 150여개에 이른다. 그중 대표적인 단체가 1871년 창설된 전미총기협회(NRA)로, 미국에서 가장 막강한 로비단체 중 하나이다. 선거 때면 총기 규제를 추진하는 후보들의 낙선운동도 벌인다. 이들에게 찍히면 당선이 힘들 정도이다. 총기 규제법안이 가끔 의회에 상정되지만, 거기서 끝나는 것도 바로 총기 정치학의 원리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총기 소지에 대한 시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1791년 제정된 미국 수정헌법 2조다. 개척시대 미국인에게 총은 곧 삶이고, 자위권 확보를 위한 최소한의 도구였다. 제대로 된 공권력이 없던 시절에 총은 곧 정의와 질서를 지키는 상징이자, 역사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하는 미국 문화의 자랑스러운 아이콘이기도 하다.

총기를 가질 권리(Gun Right)냐, 총기를 규제(Gun Control)할 것인가. 그동안 끊임없이 논쟁을 거듭해왔으나 항상 규제론이 권리론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보수적인 대법원도 2008년과 2010년 총기소지 권리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허술한 총기 규제 때문에 이번 사건이 일어났다는 주장이 나오자, 총기 규제를 주장하는 진보 블로거들 사이에서는 “아마도 NRA는 ‘사건 현장에 누군가 총을 갖고 있었다면 인명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할 거다”라고 비꼬기도 했다.

이번 사건에서 머리 관통상을 입은 후 치료 중인 가브리엘 기퍼즈 연방하원 의원은 아이러니하게도 수정헌법 2조 옹호론자이다. 특히 애리조나주는 21세 이상이면 특별한 하자가 없는 한 총기 소지를 허용할 정도로 미국 내에서 가장 총기 소지가 자유로운 주이다.

기퍼즈 의원이 회복되면 총기 정치학에 어떤 생각을 가질지 궁금하다.

김명호 특파원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