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73세에 영문학 박사 학위 김경자씨 “공부는 제게 일상의 한 부분이죠”

입력 2011-01-16 18:16


“책을 읽는다는 것, 공부를 한다는 것이 저에겐 일상의 한 부분이지요.” 1938년 5월 15일생인 김경자씨. 고희(古稀)를 훌쩍 넘긴 일흔 셋이지만 그는 다음 달 21일 대구가톨릭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는다. 그것도 영문학 박사다.

1957년 여고를 졸업한 지 54년 만이다. 그는 고교 졸업 후 40여년 만에 대학에 진학하는 집념을 보였고, 10년 만에 학사와 석사 과정을 모두 마친 뒤 이제 박사모까지 쓰게 된 것이다.

박사학위 논문 제목은 ‘제임스 조이스의 정치의식’. 일본 제국주의 지배를 받았던 우리나라의 역사적 배경과 영국 지배를 받았던 아일랜드의 역사에 공감대를 느낀 그는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을 분석, 문학적 상상력을 통한 조이스의 정치의식을 학문적으로 조명했다.

그의 학구열은 끝이 없어 보였다. 기자가 집을 찾아간 날도 거실엔 톨스토이가 쓴 ‘인생이란 무엇인가’가 펼쳐져 있을 정도였다.

경북 경산시 진량면 과수농가에서 9남매(1남8녀)의 장녀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에 천자문을 시작으로 동문선습, 명심보감 등으로 한학을 공부했다”고 했다. 주위에서 인정해 주는 영재였다. 하지만 배움의 문턱은 높았다.

“경북여고 재학 중 서울대 약대 진학을 목표로 한창 공부에 피치를 올리고 있을 때 아버지가 자취방으로 찾아와 기울어가는 집안 사정을 설명했지요.” 그는 꿈에 그리던 대학 진학을 포기하기로 했다. 8명이나 되는 동생들을 공부시켜야 하니 대학 진학을 포기하라던 아버지의 설득을 거역할 수 없었던 것이다.

진학을 포기한 그는 여고를 졸업하자마자 아버지 친구가 운영하던 경산 진량중·고교 특별교사로 채용된다. 영어와 국어를 맡아 가르치던 그는 22세 때 경북대 법대를 졸업한 남편(은행 근무)을 만나 결혼했고 평범한 아내와 엄마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내려놨던 공부를 다시 시작한 것은 1980년.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 정부에서 과외 금지 조치가 내려지면서 당시 초등학생이던 아들(43·현재 은행원)에게 직접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 영어교재를 구입한 것이 계기였다.

그는 이때부터 세계적 언어로서 영어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30년 만에 다시 공부를, 그것도 영어공부를 시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날부터 카세트테이프와 영어책들이 집안 구석에 나뒹굴었다. 이어폰을 끼고 테이프를 수없이 반복해 듣다 보니 귀에 상처가 아물 날이 없었다. 문법을 마스터하기 위해 이른바 ‘빨간영어’를 10여 차례 정독했고 거리에서 외국인을 발견하면 무조건 달려가 말을 걸었다.

그는 독학으로 영어공부를 재개한 지 20년 만인 2000년 환갑을 넘긴 나이로 대학문을 두드렸다.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너를 대학에 보내지 못한 게 평생 한으로 남는다’고 하셨어요. 아버지에게 ‘반드시 대학에 진학하겠다’고 말씀드렸고 그 약속을 지키고 싶었어요.”

재능 있던 맏딸을 대학에 보내지 못했던 친정아버지는 족보에 당시 ‘고졸’이었던 맏딸의 최종 학력을 ‘경북대 졸업’으로 올려놨을 정도로 미련이 남아 있었다. 그는 결국 대학에 진학해 아버지의 한을 풀어줬다.

뒤늦게 대학 공부를 시작한 그의 앞엔 오직 ‘전진’만이 있을 뿐이었다. 영남외국어대학 통·번역과에 입학한 그는 2년 뒤에 대구가톨릭대 영어영문학과 3학년에 편입, 2004년 학사학위를 받았다. 이어 2004년과 2007년 각각 석사와 박사과정에 진학, 학업을 계속했고 마침내 박사학위 논문이 통과되는 결실을 맛봤다.

남편(2006년 소천)과의 사이에 1남3녀를 뒀다. 늦게 시작한 공부를 마무리하는 데는 가족의 격려와 지원이 큰 힘이 됐음은 물론이다. 밤을 새우며 공부하는 아내가 애처로워 남편은 늘 “그만 자고 하라”며 걱정해 줬고 4남매는 순번을 정해 어머니의 등록금을 보탰다. 특히 마지막 학기 등록금은 대구가톨릭대 소병욱 총장이 부담해 고마움이 더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자녀들은 물론이고 며느리와 두 손자를 위한 영어교사 역할도 톡톡히 했다. 특히 초등학교 5학년과 3학년인 손자들은 매일 할머니를 찾아와 특별수업을 받는다.

요즘은 방학기간이어서 학원 교재를 중심으로 하루 한두 시간씩 수업을 한다. 하지만 손자들이 지친 기색이 보이면 수업을 접고 맛있는 간식을 만들어 주기도 하는 멋쟁이 할머니다.

2005년엔 경동전문대학(현 경산1대학)에서 1학기 동안 학생들에게 기초회화를 가르치기도 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에 흥미와 보람을 느꼈지만 학생들을 평가하고 성적을 산출하는 데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아 더 이상 강의는 맡지 않았다. “학교 공부의 끝은 다른 공부의 시작”이라는 그는 이제 또 다른 도전에 나선다. 작가가 되기 위해 올 3월 경북대 평생교육원 창작과에 들어가기로 한 것이다.

그는 왜 창작 공부를 하려 하느냐는 질문에 “나이가 들어서도 공부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자식들의 인생에 길잡이가 되는 것 같아 좋고 그동안 공부한 것을 바탕으로 자전적 소설을 쓰고 싶어서”라고 답했다. 이런 결심에는 제임스 조이스의 자전적 소설 ‘젊은 예술가의 초상’도 영향을 미쳤다. “몇 년이 걸리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자전적 소설을 쓰고 말겠다”는 그는 작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요즘 매일 한 편씩 습작을 하고 있다.

그는 다음 달 열리는 박사학위 수여식을 앞두고 잔뜩 설렌다. 외국에 나가 있는 첫째와 둘째 딸 가족을 비롯해 4남매 모두가 학위수여식에 참석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가족들이 한곳에 모두 모여 파티를 즐길 생각에 미소가 가득하다. “사람은 호흡이 멈추는 순간까지 손에서 책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그에게 이번 박사학위 취득은 배움의 완성이 아닌 또 다른 시작임이 분명했다.

글·사진=김재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