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망 개선] “빨대효과 막아라” 지자체들, 지역상권 지키기 ‘비상’

입력 2011-01-16 18:07

교통망 개선은 지방자치단체에 기회이자 위기다. 경제적 창출 효과를 지역 발전으로 연결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약속의 땅’이 될 수도, ‘종속의 땅’이 될 수도 있다. 교통망 개선 이후 경제적 지각변동이 일고 있는 지자체들의 실태와 대응 방안을 살펴본다.

◇강원도 춘천, ‘빨대효과’가 ‘분산효과’ 압도=“수도권과 가까워지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네요. 닭갈비 막국수 업소는 좋을지 몰라도 옷 가게들은 파리만 날리고 있어요.”

16일 강원도 춘천시 명동 지하상가에서 만난 이모(46·여)씨. 이씨의 말처럼 상가 내 옷가게 대부분이 개점휴업 상태였다. 상점마다 ‘50% 파격 세일’이란 팻말을 써 붙였지만 물건을 구입하는 손님이 없었다. 이씨는 “전철이 생기면서 주 고객인 대학생들이 옷도 사고 구경도 할 겸 서울로 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동시간과 비용이 줄면서 유명 브랜드가 많은 아울렛 형태의 수도권 대형 의류점으로 소비인구가 이탈하고 있는 것이다.

대학가 주변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상주 인원이 줄면서 인근 상가도 매출이 줄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강원대 춘천캠퍼스 인근에서 원룸을 운영하는 홍모(63·효자3동)씨는 “대규모 기숙사 시설이 들어선 데다 통학시간마저 단축돼 방을 보러 오는 학생이 없다”며 “일부 건축주들은 투자 금액조차 회수하지 못해 빚만 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12월 경춘선 복선전철이 개통된 강원도 춘천시가 ‘분산효과(지역 개발)’보다 ‘빨대효과(수도권 집중)’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서울 등 수도권에서 접근성이 좋아지며 지난해 춘천을 찾은 관광객 수는 사상 최대인 700만명을 넘어섰고, 올해는 1000만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지역상권은 오히려 과거보다 못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KTX와 거가대교 개통으로 상권 재편 중인 부산·경남=부산과 거제를 잇는 거가대교 개통과 더불어 창원·김해를 수도권과 직통으로 이어주는 KTX 2단계 구간이 본격 개통되면서 부산·경남 지역 상권에 거센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올 들어 거가대교 통행료 유료화로 ‘공짜 특수’ 거품이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평일 1만8000대, 주말 3만대의 교통량을 보이고 있다. 이 중 상당수는 쇼핑 등의 목적으로 부산을 찾는 거제·통영 지역 주민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부산 롯데백화점의 경우 거가대교 개통 2주 전과 2주 후를 비교했을 때 거제와 통영 지역거주 고객 수가 2.8배 정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쇼핑객 수는 4800여명으로 개통 전보다 3100여명 증가했고, 구매액은 10억원에서 16억원으로 늘었다. 거가대교와 가까운 광복점에서는 고객 수와 구매액이 모두 4배가량 늘어나기도 했다. 부산 원정 쇼핑이 늘어나는 만큼 거제·통영 지역 상권이 위축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부산∼울산 고속도로 개통 이후 해운대 신세계 센텀시티 백화점이 지난해 12월 신용카드 매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울산에 주소지를 둔 고객 1만8000여명이 부산 원정 쇼핑을 즐긴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충북 오송, 반쪽짜리 신도시=KTX 오송역 개통으로 서울까지 1시간 생활권으로 가까워진 충북 오송은 대규모 국책기관 유치에도 불구하고 이렇다할 상권이 형성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11∼12월 6대 국책기관이 오송첨단복합의료단지 내에 입주를 마쳤고,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이 오는 3월 동물실험동에서 사용할 동물들만 옮기면 이전 작업이 100% 완료된다. 하지만 오송 지역에는 번듯한 쇼핑센터 하나 없는 상태다. 신도시 개발 후 임대료 등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으나 정주 인구가 많지 않아 섣불리 가게를 열었다간 빚더미에 오르기 십상이라는 인식이 확산됐기 때문이다.

국책기관 전체 직원 2500명 중 600여명은 KTX를 통해 출퇴근하고 있으며 나머지 직원 대부분도 주말이면 수도권 등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김광현(63) 오송1리 이장은 “천정부지로 뛰어오른 땅값 보상 등의 문제로 역세권 개발이 늦어지는 것 같다”며 “허허벌판에 건물만 달랑 올라가 있고 주말이면 모든 직원이 빠져 나가 황량하다”고 말했다.

◇지자체 상권 보호 안간힘=거센 변화의 바람 앞에선 지자체와 지방병원들도 지역 상권보호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춘천시는 지역 상권이 수도권으로 흡수되는 양상을 보이자 지난 13일 상가번영회 대표들을 모아놓고 ‘춘천 경제 살리기 종합현안대책회의’를 개최했다. 시는 회의에서 교통망 개선이 지역 경기 활성화로 연결될 수 있도록 주요 상가 주변에 주차장(500면) 등 편의시설을 대폭 확충해 소비자를 끌어들이기로 했다.

울산시는 자체 복합유통시설 건립을 추진 중이다. 시 관계자는 “빨대 효과를 막고 동남내륙경제권의 성장거점으로 만들기 위해 KTX 울산역세권 내 복합환승센터 건립과 도시 내 연계 교통체계 구축, 서부권 관광자원과 연계할 수 있는 복합유통시설 건립 등을 조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성균관대학교 삼성창원병원은 서울지역 병원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삼성창원병원은 이달부터 매월 두 차례 서울 삼성암센터 의료진과 함께 대장암 등 소화기암 수술을 집도하는 방식으로 의료 서비스 수준을 높여 환자 유출을 방지한다는 계획이다.

춘천·오송·창원=정동원 이종구 이영재 기자 cd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