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그림, 한 화폭에서 수줍게 만나다… ‘시화일률’전

입력 2011-01-16 17:56


“내려갈 때/보았네/올라갈 때/보지 못한/그 꽃.” 시인 고은의 ‘그 꽃’을 그림으로 표현한다면? 화가 고영훈 석철주 김정헌이 이 시를 읽고 각자의 작업방식대로 ‘그 꽃’의 이미지를 그렸다.

“긴 강을 헤엄쳐 온 내 안의 상처들은/어느 덧 하늘의 가슴에 밀물지는데/길게 꼬리 진 노을 속에 젖은 외로움 하나/아직도 솟대처럼 우두커니 서 있다.”로 끝나는 백수인의 시 ‘강변에서’를 동구리 그림으로 잘 알려진 권기수는 ‘붉은 강-바람소리’로 묘사했다.

시는 형상없는 그림이고 그림은 형상있는 시라는 말도 있듯이 시와 그림은 전통적으로 시정(詩情)과 화의(畵意)가 조응하는 예술세계로 두 장르 모두 심미적 가치를 추구해 왔다. 시 속의 그림, 그림 속의 시를 끄집어내는 ‘시화일률(詩畵一律)’ 전이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2월 6일까지 열린다.

문학평론가 김재홍과 미술평론가 윤범모의 기획으로 74명의 시인과 43명의 화가가 참가했다. 예로부터 문인들과 화가들은 자주 교유하며 예술적 감흥을 주고받았다. 이번에 화가들에게 시를 열람케 하고 화가 스스로 시를 선택해 그림을 그리게 했다. 시를 독창적인 붓질로 재해석한 작품을 걸고 옆에 시를 붙여 시도 읽고 그림도 감상할 수 있도록 전시장을 꾸몄다.

1부 전시에는 지난 20년간 정지용문학상, 영랑시문학상, 시와시학상을 수상한 시 40편이, 2부에는 시와시학을 통해 등단한 시인들의 모임인 시와시학인회 회원들의 대표작이 그림과 함께 소개된다.

“나뭇잎이 흔들릴 때/가만히 그 속으로 따라가 본다/이파리가 흔들리기까지/먼저 가지가, 줄기가/뿌리를 묻고 있는 저 땅이/얼마나 많은 날을 삭아내려야 했는지….” 시인 김주경의 ‘나무는’은 화가 이지현의 ‘꿈꾸는 책-나무는’을 통해 자신만의 이미지를 얻었다.

“난초 화분의 휘어진/이파리 하나가/허공에 몸을 기댄다/허공도 따라서 휘어지면서/난초 이파리를 살그머니/보듬어 안는다”로 이어지는 나태주의 ‘기쁨’은 김지혜의 ‘머리에 꽃달기’와 잘 어우러지고 “눈 내린 겨울밤에/동백 꽃봉오리 터지는 소리/화르르 화르르 고요를 깨고 있네”라고 읊는 김효중의 ‘얼음 불꽃’은 홍지연의 그림 ‘불꽃’과 맥을 같이 한다.

강은교의 ‘너를 사랑한다’는 김정헌과 전병현이, 김지하의 ‘백학봉’은 류민자와 김종구가 각기 그렸다. 김남조의 ‘면류관’은 이이남의 영상미디어 작품 ‘면류관-이사야서 53장’으로 재탄생하고 도종환의 ‘바이올린 켜는 여자’는 윤상렬의 그림 ‘리듬’과 운율을 맞추었다.

이밖에 김광균 김초혜 김후란 문정희 신달자 안도현 유안진 이근배 정호승 등 시인들의 작품과 김기라 김준권 도성욱 민정기 박대성 박항률 서유라 손연칠 임옥상 등 화가들의 그림이 짝을 이뤘다. 서울 전시 이후 2월 23일부터 3월 13일까지 부산 해운대 노보텔 앰배서더 가나아트부산에서 전시회가 이어진다.

김재홍 윤범모 두 기획자는 “시서화삼절(詩書畵三絶)이라고 했듯이 시와 그림은 원래 한몸”이라며 “시와 그림의 행복한 만남을 통해 하늘에는 별, 땅에는 꽃, 사람에게는 시라는 낙원을 누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02-3217-0233).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