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형의 ‘문화재 속으로’] (51) 경북 영덕 원구마을 오촌댁
입력 2011-01-16 17:56
경북 영덕군 영해면에서 영양 방면으로 통하는 918번 지방도로를 지나다 보면 원구마을이 나옵니다. 이곳은 15세기 말 조선 성종 때 종사랑(從仕郞·정9품)을 지낸 남준이라는 인물이 개척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의 후손은 모두 다른 지역으로 떠나고 16세기 중엽까지 입촌한 영양남씨, 무안박씨, 대흥백씨가 500년 가까이 거주하고 있는 동족부락이랍니다.
이 가운데 영양남씨는 1507년 무과에 급제해 훈련원 참군(정7품)을 역임한 남비와 아들 남한립 부자가 처음 들어왔다는군요. 현재 원구마을에서 거주하는 영양남씨는 전부 이들의 후손이지요. 남한립의 증손인 남경훈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의병장으로 공을 세우고 학덕과 효행이 널리 알려져 그의 본가는 경북도 유형문화재 148호로 지정됐답니다.
무안박씨의 후손들도 임진왜란 때 공훈을 세운 박세순 등 인물이 즐비하고 대흥백씨 역시 퇴계 이황의 학통을 이어받은 백인국 등 인재가 숱하게 배출됐습니다. 세 가문의 후손들이 오순도순 살아가는 원구마을에 오촌댁(梧村宅)이라고 불리는 가옥 한 채가 있었지요. 영양남씨의 후손인 남병혁(49)씨 소유로 그의 증조부 때 대흥백씨 문중에서 구입한 한옥이랍니다.
오촌댁이라고 불리는 배경은 소유주의 조모가 원구마을 건너편에 위치한 오촌리에서 시집을 왔기 때문이지요. 마을사람들에 의하면 이 집의 건축연대는 약 400년 전인 1600년쯤이라고 전해졌지만 지난해 8월 해체 과정에서 발견된 상량문(上樑文·집을 새로 짓거나 고친 내력과 날짜 등을 적은 글)을 통해 1848년에 건립된 것으로 확인됐답니다.
대흥백씨와 영양남씨 가문의 애환이 깃든 오촌댁이 6개월의 이전 작업을 거쳐 최근 국립민속박물관 야외 전시장으로 옮겨졌습니다. 소유주의 기증으로 이뤄진 이건(移建) 작업은 기와 하나하나와 목재 하나하나 버리지 않고 그대로 재현했기에 전통 건축 양식을 온전히 보여주고 있답니다. 집은 전면 4칸, 측면 5칸으로 가운데 정사각형 마당을 가진 완전한 ㅁ자형이지요.
안채의 가구는 삼량(三樑·양쪽 처마 도리와 용마루 도리로 꾸민 지붕틀)으로 이뤄지고 동쪽으로 나있는 대문을 들어서면 왼쪽으로는 사랑방 공간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마구(馬具)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사랑공간은 마루를 중심으로 ㄱ자로 꺾이면서 2개의 방이 연결되는데 위쪽 방에는 벽면에 여러 가지 물건을 보관할 수 있는 벽장을 두었답니다.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없는 ㅁ자형 민가 중 하나로 부엌 출입문이 따로 없이 방으로 통하게 한 것도 보기 드문 형태입니다. 낡고 오래돼 쓰러져 가던 오촌댁을 서울 도심 한가운데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뿐입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160여년 만에 재건된 이 한옥을 관람객들에게 개방하고 학생들에겐 체험 공간으로 활용한다니 전통의 멋과 향기를 만끽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요.
문화과학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