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발레 최고 스타 김주원·차세대 유망주 이은원 ‘지젤’서 한 무대

입력 2011-01-16 22:27


발레리나를 꿈꾸던 여덟 살 소녀 이은원의 눈에 발레리나 김주원은 너무 아름다워 보였다. 무대에서 춤을 추는 모습에 눈을 뗄 수 없었다. 공연을 마치고 무대 뒤에서 가쁜 숨을 내쉬며 스트레칭을 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소녀는 그대로 따라하기도 했다. 김주원도 소녀를 눈 여겨 봤다. 균형잡힌 체형과 긴 팔다리를 보며 “발레를 하면 성공할 재목”이라고 생각했다.

지난 13일 국립발레단 연습실에서 만난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주원과 '코르 드 발레(군무를 추는 무용수) 이은원은 서로에 대한 기억을 이렇게 더듬어갔다.

첫 만남 이후 십여 년의 세월이 지나 두 사람은 국립발레단에서 다시 만났다. 지난해 12월 공연된 ‘호두까기 인형’에서다. 지난해 7월 인턴단원으로 입단한 이은원은 ‘호두까기 인형’에서 주인공 마리 역을 맡아 전막공연에 데뷔했다. 매년 ‘호두까기 인형’ 무대에 섰던 김주원은 후배에게 길을 열어준다는 생각에서 무대에 서지 않았다. 대신 후배들의 지도를 맡아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가르쳤다. 김주원은 이은원을 완벽한 마리로 만들어 ‘호두까기 인형’에 세웠다. 이은원은 ‘호두까기 인형’을 통해 차세대 발레 스타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김주원은 이은원을 ‘백색의 발레리나’라고 정의했다. 흰 도화지 위에 무엇이든 그려낼 수 있듯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은원이는 가르치는 모든 걸 자기 것으로 흡수해요. ‘호두까기 인형’을 할 때도 어떤 걸 주문하면 처음에는 혼란스러워하다가도 다음날이면 완벽하게 표현해서 보여줬어요. 노력도 하지만 재능이 뛰어나요.”

국립발레단이 올해 첫 공연으로 선택한 ‘지젤’에서 두 사람은 김지영과 함께 주인공 지젤에 낙점됐다. 한국발레의 최고 스타와 차세대 유망주를 같은 공연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발레팬들은 흥분하고 있다. 올해 정단원이 된 이은원은 그야말로 수직상승했다. 예원학교를 나와 2007년 고교과정을 생략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 조기입학한 이은원은 2007 중국 상하이 국제콩쿠르 2위, 2008년 불가리아 바르나국제콩쿠르 주니어 3위 등에 입상하며 주목을 받아 왔다. 쟁쟁한 무용수들이 모인 국립발레단에서 신인이 지젤 역에 뽑힌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캐스팅 소식을 접하고 이은원은 “깜짝 놀랐다”고 회상했다. “학교에서도 ‘지젤’은 2분짜리 솔로만 해봤거든요. 너무 해보고 싶었어요. 부담이 되지만 부담을 가지면 더 힘들 거 같아요. 제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배우는 마음으로 하려고 합니다.”

김주원은 “올해로 서른네 살이 됐는데 이제는 모든 공연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제일 잘 할 수 있는 작품을 골라서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수많은 공연과 경험을 통해 많은 언어를 몸에 축적한 김주원은 “파리오페라발레단 버전의 지젤은 처음이어서 나도 모든 걸 비운 채로 시작한다”면서 “새로운 작업을 통해 이전보다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거 같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국립발레단이 ‘지젤’을 공연하는 건 9년 만이고 러시아 버전이 아닌 파리오페라발레단 버전을 선보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2월 24일부터 27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된다(02-587-6181).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