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삶에 관한 8가지 에피소드… 극단 차이무 연극 ‘올모스트, 메인’

입력 2011-01-16 17:30


별빛을 조명삼아 두 남녀가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다.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하지만 서로 어색해하며 멈칫거린다. 긴 소파의 양끝에 앉아 먼 산을 바라보며 한참을 기다리고야 여자가 조심스레 말을 건넨다. “사랑해.” 한동안 고요한 적막이 흐른다. “어….” 돌처럼 굳어있던 남자는 이 한마디를 하곤 다시 침묵에 잠긴다. 그리곤 용기를 내 “나도…사랑해”라고 조심스레 말을 건넨다. 여자는 용기를 내 남자에게 다가가 살포시 어깨에 기댄다. “이렇게 있으니까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거 같아.” 긴장한 남자는 “아니야. 다른 관점에서 보면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거야”라며 분위기를 깬다. 여자가 한걸음 물러서자 남자는 “가까워졌다”고 한다. 두세 걸음 더 가자 “더 가까워졌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녀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그제야 당혹해 한다. 남자는 여자를 하염없이 기다린다.

극단 차이무의 연극 ‘올모스트, 메인’(연출 이상우)은 일상에서 일어날 법한 사랑과 삶에 관한 이야기를 담백하게 담아내는 작품이다. 모두 8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옴니버스 형식이다. 일이 벌어지는 장소는 미국 메인주의 경계선 어디쯤이다. 지역상으로는 메인 주에 속하나 아직 행정적인 절차가 끝나지 않아 정식으로 메인 주는 아닌 장소다. 남녀관계처럼 명확하지 않은 모호함을 상징한다.

남편과 사별하고 여행을 온 여인과 사랑에 빠지는 남자, 실수로 잘못된 문신을 새겼는데 문신 속의 이름과 같은 여자를 운명적으로 만난 남자, 아무런 감각을 느끼지 못하다가 사랑에 빠지면서 고통을 알게 된 남자, 사랑하는 남자를 무작정 떠났다가 다시 돌아왔으나 정작 사랑했던 남자의 얼굴도 기억 못하는 여자, 오랜 친구로 지내다 서로의 마음을 알게 된 한 커플 등 다양한 사랑 이야기가 100분간 펼쳐진다.

‘올모스트, 메인’은 여백의 미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무대에는 의자 외에 다른 무대 장치가 없다. 감정을 전달하는 배우들의 대사는 절제 돼 있고 대화 사이에 흐르는 적막이 감정 선을 읽는 훌륭한 도구로 작동한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번안극이다 보니 모든 에피소드에 완전 공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30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02-747-1028).

김준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