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교회 뒤흔드는 재개발정책] (상) 터전을 잃어버린 목회자들

입력 2011-01-16 19:20


“교회도 목회의 꿈도 철거됐다”

잘못된 재개발정책으로 교회가 사라지고 있다. 4명의 목회자는 억울하고 안타까운 현실에 목놓아 울다 못해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사무실 앞에서 20일간 단식 농성을 벌였다. 6일 거리시위까지 나선 한기총은 전국 재개발지역에 속해 있는 1만3000여 교회 중 1만2500여개가 쫓겨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말 그럴까. 취재 결과 그 누구도 교회의 피해 상황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 다만 재개발에 따라 교회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이에 본보는 3회에 걸쳐 재개발지역 목회자들과 그 가족의 삶이 어떠한지, 왜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 해결 방법은 없는지 등을 알아보았다.

◇“우리는 죄인처럼 쫓겨나야 했다”=3일 서울 우면2지구(우면동 297번지 일대) 주거권실현대책위원회 사무실에서 만난 백승교회(박세환 목사)의 배옥화(57) 권사는 지난해 11월 23일 철거된 교회에 대해 묻자 목소리를 높였다. “목사님이 SH공사(구 서울특별시 도시개발공사)가 주려는 보상금이 터무니없다며 버티자 SH공사는 철거 시한이 적시된 법원 판결까지 받아내 강제 철거를 진행했어요. 1주일만 연기해 달라는 목사님의 애원도 통하지 않았어요.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재개발인지 알 수 없습니다.”

배 권사의 안내를 받아 교회 터를 보니 눈과 흙더미, 파괴된 기물만 가득했다. 우뚝 서 있는 십자가 철탑만이 여기가 교회였음을 알려줄 뿐이었다.

청와대 앞 1인 시위까지 벌였던 박세환(53) 목사는 “나머지 교회들은 대토를 준다는 SH공사의 말에 현혹돼 나갔지만 구두협상이라 제대로 보상받지 못했다”면서 “턱없이 부족한 보상금을 받고 나간 목회자들은 타지의 높은 임대료를 못 견디고 아예 지방으로 내려가거나 목회 자체를 포기했다”고 전했다.

인근의 새소망교회 역시 백승교회와 같은 날 강제 철거됐다. 하지만 예배는 계속 드린다. 남은 30여명의 성도가 근처에 예배 장소를 마련했고, 삶의 터전을 옮긴 성도들도 주일마다 찾아온다. 새소망교회 김주숙(55) 사모는 “2004년부터 재개발 얘기가 나왔지만 기도하면서 성도와 함께 끝까지 남아 있기로 했었다”며 “현재 SH공사의 보상금으로 근근이 생활을 꾸려나가는데 뾰족한 대책이 없는 실정”이라고 했다. 김 사모는 “타지에 있는 자녀가 걱정할까봐 자세한 얘기도 꺼내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재개발대책위원장인 새소망교회 최남규(57) 집사도 막막하기는 마찬가지다. 하나님만 의지하는 그는 그동안 마음이 흔들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며 울먹였다. 최 집사는 “다 큰 딸이 엄마가 용역 직원들한테 입에 담지 못할 욕을 듣는 것을 보고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며 참담해했다. 또 지난달 권익위원회 임원급 인사 한 명과 비공식 면담을 가졌는데, 그 위원 또한 재개발정책의 맹점을 잘 알고 있었다고 술회했다.

우면2지구에 정해진 종교 부지는 4곳이다. 그중 3곳에는 벌떼교회 남수지교회 초동교회가 들어서기로 결정됐다. 나머지 한 곳은 곧 매각 공고를 통해 입주할 종교 시설을 찾게 된다.

◇“가족들이 신용불량자 됐다”=“재개발 후 지옥 같은 시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 14일 경기도 김포시 감정동 나진검문소 앞. 배창환 목사를 따라 간 곳에 컨테이너가 하나 있었다. 배 목사는 2000년 김포시 장기동에 60평짜리 상가를 빌려 지구촌교회를 개척했다. 보증금 3000만원, 월세 40만원에 인테리어 비용만 7000만원이 소요됐다. 철거 전 교회는 장년 80명, 학생 150명 정도 출석했다. 배 목사가 꿈꾸던 독거노인과 불우 청소년을 위한 사역이 자리 잡아가던 중이었다.

봉현호 목사 역시 2000년에 김포시 운양동에 땅 200평을 사서 양문교회를 개척했다. 철거 전 성도가 장년 80명까지 성장했다. 봉 목사는 남은 생을 김포에서 평화롭게 보내고 싶었다.

그러나 김포한강신도시 개발 계획이 발표되면서 그들의 꿈은 사그라지게 됐다. 봉 목사의 교회는 2005년 철거당했다. 보상금으로 평당 180만원, 총 3억여원을 받았다. 일부는 교회 개척 시 생긴 부채를 갚는 데 사용했다. 목회 활동을 지속하기 위해 나머지 돈으로 전셋집을 얻어 가정교회를 꾸렸다. 그러나 성도 수는 한자릿수를 못 벗어나고 있다.

“무조건 나가라고 합디다. 경찰이 대거 동원돼 철거반을 돕더라고요. 그나마 이곳을 지키는 이유는 한 명의 성도라도 붙잡고 싶어서였는데…. 원주민의 85%가 쫓겨났습니다. 이것이 무슨 서민들을 위한 정책입니까.”

봉 목사는 “이런 모습이 공개되는 게 치욕스럽다”면서 “잘못된 제도로 피해를 입었는데 한국교회는 우리를 마치 실패자처럼 취급한다”고 울분을 토했다. 그는 “더 이상 목회를 못하더라도 다음에 똑같은 피해를 받지 않도록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했다.

2007년 철거를 완강히 반대하던 배 목사에게 LH(한국주택토지공사) 측에서 종교 부지를 주겠다고 제안했다. 이에 이사비용 2300만원을 보상받고 나왔다. 다시 장기동으로 돌아갈 희망을 품고 있었으나 현실은 냉혹했다.

“그때는 택지 분양가가 이렇게 비쌀 줄 몰랐어요. 김포 지역 보상비가 평당 평균 200만원입니다. 그런데 새 택지를 분양 받으려면 얼마인지 아세요? 평당 600만~700만원입니다.”

배 목사는 시골 노모의 도움을 얻어 구한 컨테이너에서 남은 12명의 성도와 교회를 지켜왔다. 하지만 교회 개척으로 생긴 부채를 갚아야 하고 월세 40만원을 계속 내기에는 너무 힘이 부쳤다. 지난해 5월 이후 결국 목회를 포기해야 했다. 그는 가족에게 미안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들 학자금 대출 받은 돈으로 생활비를 충당했어요. 저희 부부는 파산신청을 했고요. 부채를 갚느라 아이들까지 신용불량자가 됐습니다. 가난과 고통을 물려주게 돼 가슴이 찢어집니다. 그것도 하나님을 전해야 한다는 목회자가….”

함태경 기자, 양민경 이사야 인턴기자 zhuanji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