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런 한인상’ 받은 하버드대 법대 석지영 종신교수

입력 2011-01-14 18:21

“뒤바뀐 환경,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영어, 완전히 낯선 나라… 이런 고통스러운 것들이 오히려 나에게 세상을 헤쳐 나가는 힘을 만들어 줬습니다.”

지난해 11월 하버드대 법대에서 아시아계 여성으로는 처음 종신 교수가 된 석지영(37·미국명 지니 석)씨, 그가 말하는 자신의 어릴 적 성장 과정은 한마디로 ‘강인하게 헤쳐 나가기’였다.

석 교수는 13일(현지시간) 워싱턴DC 윌러드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한·미경제연구소(KEI) 주최의 미주한인의 날 행사에서 ‘자랑스런 한인상’을 받았다. 이 30대 젊은 여교수는 서남표(74) 한국과학기술원 총장과 박윤식(71) 조지워싱턴대 교수와 나란히 수상했다.

석 교수는 기자 간담회에서 어린 시절의 성장 과정을 담담하게 밝혔다. 여섯 살이 되던 1979년, 부모를 따라 뉴욕 퀸즈로 이민한 그는 영어를 한마디도 못한 채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원래 혼자서 재잘거리기도 잘하는 명랑한 아이였지만 학교에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게 됐다. 열 살도 안 된 어린아이에게 그것은 고통 그 자체였다”고 말했다.

그 나이에 소외감을 느꼈고, 완전히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방황했다고 한다. 석 교수는 “적응하는 게 무척 고통스러웠지만 오히려 상황을 헤쳐 나가는 힘을 키우게 했고 나를 강인하게 만들었다”고 회고했다. 그러한 경험이 사물을 관찰하고 상황을 이끌어가는 능력을 준 것 같다고도 했다.

석 교수의 성장엔 주요한 두 가지 배경이 있었다. 우선 절대적 영향을 준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어릴 적 매일같이 자신과 여동생을 동네 도서관으로 데리고 갔다. 그는 “엄마로부터 책을 찾는 방법을 배우고, 스스로 보고 싶은 책을 찾아다니며, 혼자서 은밀한 발견을 하는 즐거움을 배웠다”며 “책을 읽으라는 소리를 너무 많이 들으며 자랐고, 한 번에 10권을 읽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책을 읽는 게 즐겁다는 걸 깨달았고 자유를 추구하는 힘을 키웠던 것 같다”고도 소회했다.

두 번째 배경은 퀸즈의 첫 초등학교 친구들이었다. 대부분 요르단 이스라엘 멕시코 체코 일본 인도 중국 등 전 세계로부터 온 이민자의 아이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전쟁·망명·추방·재건·생존 등에서 비롯되거나 미국에서의 새로운 미래를 찾는 것이었다.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만 하는 것과 연관성이 있는 환경이었다.

그는 범죄, 가족법에 관한 저서와 논문 등이 평가를 받아 하버드 법대 종신교수로 발탁됐다. 자신의 목표에 대해선 “최고의 학자, 최고의 선생이 되는 것이다. 미래에 영향력을 미칠 학생들을 책임감 있게 가르치는 게 내가 할 일”이라고 간단명료하게 정리했다. 그는 차세대 한인들에게 “자신보다 앞서 살아간 사람들 중에서 멘토를 만드는 게 그보다 더 중요한 사람이 될 수 있는 열쇠”라고 조언했다.

석 교수는 예일대를 졸업하고 옥스퍼드대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하버드 법대를 졸업했다.

워싱턴=김명호 특파원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