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불평등’ 공존을 위한 모색… 하종오 신작 시집 ‘제국’
입력 2011-01-14 17:23
하종오(57·사진) 시인이 근래 천착하고 있는 건 자본과 노동 시장의 잔혹한 현실을 담은 아시아적 리얼리즘의 거대한 벽화다. 그는 시집 ‘반대쪽 천국’(2004) 이후 이주민노동자와 다문화 가정의 현실을 시적 대상으로 삼은 다섯 권의 시집을 펴냈다.
신작 시집 ‘제국’(문학동네)은 그 연장선상에 있으면서,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빈곤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돌아보게 하는 새로운 벽화다. “갑과 을은 가전회사 입사 동기생/중년까지 버티어 승진하여서/갑은 베트남 공장에/을은 체코공장에/공장장으로 발령났다//(중략)//베트남 노동자나 체코 노동자들이 갖는 희망은/한국에서 온 자본으로 세워진/공장에 오래 다니며/봉급을 더 많이 받는 것이었으므로/먼저 갑의 몸짓을 닮아갔고 을의 표정을 닮아갔다”(‘제국(諸國 또는 帝國)의 공장-인사말’ 부분)
임금이 싼 곳을 찾아 공장을 짓고 제품을 생산함으로써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갑과 을은 한국이라는 제국(諸國)에서 파견된 노동자지만 현지에서는 한국이라는 제국(帝國)에서 온 고용주이다. 갑과 을을 빨리 닮아야 가난에서 벗어난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건 베트남과 체코 노동자들이다. 그러나 갑과 을은 이들을 단순노동자로 부릴 뿐이다. 그뿐 아니다. 그들은 약소자들의 역사인식은 안중에도 없다. 그건 지구 전역에 걸쳐 행해지는 제국(帝國)의 경제행위인 동시에 착취행위인 것이다.
“서아프리카 출신 청장년들과/동남아시아 출신 청장년들은/독재와 가난에서 조국을 구할 수 있다면/역이민으로 귀국하여 저항하고 싶지만/적은 봉급이라도 달마다 현금으로 주는/한국의 공장에서 쉽게 떠나지 못한다”(‘한국의 공장에서’ 부분)
하종오는 감정이입이나 가치 판단을 하지 않고 마치 다큐멘터리를 찍듯, 있는 사실 그대로를 시로 옮기고 있다. 이런 건조한 문체는 노동자를 착취하는 자본의 차가운 얼굴을 드러내는 데 효과적이다. 시인은 “그들 모두는 의식주를 얻고 가족과 행복하게 생존하기 위해 같은 시각에 같은 장소에서 좌절하고 환희하는 세계의 시민들이다. 그 세계의 시민들에게 제국(諸國)은 공존해야 되고 제국(帝國)은 부재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철훈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