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내면의 울림 깨달음의 시어들… 천양희 시집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
입력 2011-01-14 17:23
그녀의 손님은 고독이다. 그녀는 고독을 귀한 손님으로 맞이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고독에게 방석을 내주며 아랫목에 앉힌다. 고독이 찾아오면 혼자라는 사실도 잠시 잊는다. 고독의 손을 잡고 고독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몇 번이고 안부를 묻는다.
천양희(69·사진) 시인이 6년 만에 펴낸 일곱 번째 시집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창비)에는 무릎을 꿇고 고독을 맞아들이는 독거인의 곡진한 노래가 코끝을 찡하게 울린다.
“고독이 날마다 나를 찾아온다/내가 그토록 고독을 사랑하사/고(苦)와 독(毒)을 밥처럼 먹고 옷처럼 입었더니/어느덧 독고인이 되었다/고독에 몸 바쳐/예순여섯번 허물이 된 내게/허전한 허공에다 낮술 마시게 하고/길게 자기고백하는 뱃고동소리 들려주네”(‘성(聖) 고독’ 부분)
세상에 고독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만 시인은 고독에게 ‘성(聖)’이라는 후광을 두르고 신봉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시인의 가슴에 동굴을 파고 들어앉은 고독이 얼마나 절절했으면 이런 역설의 시가 움텄을까, 겨우 짐작만 해볼 뿐이다. 이런 혹독한 시간을 뒤로 하고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한층 더 유연하고 부드러운 말의 힘을 보여준다.
“오래된 나무를 보다 진실이란 말에/대해 생각해 본다 요즘 들어 진실이란/말이 진실로 좋다 정이 든다는 말이 좋은/것처럼 좋다 진실을 안다는 말보다 진실하게/산다는 말이 좋고 절망해봐야 진실한 삶을/안다는 말이 산에 든다는 말이 좋은 것처럼/좋다”(‘진실로 좋다’ 부분)
‘좋다’는 말과 ‘좋은 것처럼 좋다’는 말의 반복은 단순히 ‘좋다’는 데 머물지 않고 그것을 넘어서는 새로운 의미망을 만들어낸다. ‘정이 든다는 말’ ‘산에 든다는 말’이 이미 좋다고 전제해 놓고 진실과 연관된 생각을 열거함으로써 ‘든다’라는 말과 ‘진실’이란 말이 서로 어울리는 말이며 그 두 말을 함께 좋아한다는 사실을 더욱 설득력 있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이 시집의 주안점이 있다.
천양희 시인만의 개성적인 화법은 이제 칠순에 이르러 새롭게 발화하고 있으니, 이 시집이야말로 ‘말의 힘’을 보여주는 그의 후반기 문학의 시작인 것이다.
정철훈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