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울었죠, 오늘도 안 죽었어라며…” 2011년 ‘다카르 랠리’ 종반 1996년 한국인 첫 완주 김한봉씨

입력 2011-01-13 18:23


그는 매년 이맘때가 되면 사막 냄새가 그리워진다. 낮에는 섭씨 50도가 넘는 열기로 레이싱복이 땀으로 하얗게 절고 밤에는 0도 가까이 떨어지는 칠흑 같은 어둠이 공포로 다가왔지만 매년 1월만 되면 사하라의 황금빛 모래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언제든 다시 모래 위를 질주하고 싶어 하는 그는 1996년 한국인 최초로 다카르 랠리를 완주한 김한봉(46) 펠롭스 레이싱팀 단장이다. 올해 다카르 랠리가 종반으로 달려가고 있는 13일 경기도 용인 사무실에서 김 단장을 만났다.

“다카르 랠리는 드라이버에게 꿈과 같습니다. 레이스를 시작한 1987년부터 늘 바랐던 랠리였죠.”

김 단장은 쌍용자동차의 제안으로 1996년 다카르 랠리 부분개조(T2) 부문에 무쏘를 몰고 출전했다. 스페인 그라나다를 출발해 모로코, 모리타니, 기니, 세네갈 다카르에 도착하는 7579㎞의 죽음의 구간이었다.

김 단장이 그토록 바라던 대회였지만 출발은 좋지 않았다. 미리 섭외했던 이탈리아 코드라이버(Co-Driver·랠리에 동석해 방향을 지시하는 항법사)가 김 단장을 보자마자 “저런 어린 아이(당시 31세)에게 내 목숨을 맡길 수 없다”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다카르 랠리 경험도 없었고 서양인이 보기에 저 같은 동양인이 못 미더웠던 거죠.”

급하게 코드라이버를 다시 구했으나 새 코드라이버 파바로는 다카르 랠리 참가는 고사하고 코드라이버 경험 자체가 없었다. 첫 출전하는 김 단장에다 오프로드에서 눈 역할을 하는 코드라이버까지 ‘초짜’였던 셈이다

“베테랑 레이서들은 모래 색깔만 보고도 그 모래의 성질을 알 수 있었지만 저는 경험이 없어 시행착오를 반복했습니다. 코드라이버와도 수없이 의견 충돌을 일으켜 싸우기도 많이 했어요.”

선두권은 저녁때쯤 구간을 마무리했지만 김 단장은 새벽에야 겨우 구간을 끝낼 수 있었다. 다음 출발 시간까지 구간을 마무리하지 못하면 탈락하기 때문에 김 단장은 매일 20시간 정도 운전했다.

“밤에는 낭떠러지 같은 아찔한 지역도 많이 지나쳤습니다. 새벽에 도착해 우리 스태프를 보면 슬프다는 감정에 앞서 절로 눈물이 났어요. ‘나 오늘도 안 죽었어’, ‘나 오늘도 완주했어’라는 인사였던 셈이죠.”

레이스를 무사히 마친 김 단장은 사막에 흘려보낸 땀과 눈물로 몸무게가 12㎏이나 줄었다. 마지막 구간은 달리는 내내 코드라이버와 함께 울었다. 보통 4∼5번 출전해야 완주하는 다카르 랠리에서 첫 출전에 완주까지 한 김 단장의 성적은 자동차 종합 66위, T2 부문 9위. 당시 오토바이까지 295대가 참가해 121대만이 완주에 성공한 걸 감안하면 놀라운 결과였다. 오토바이 부문 6회와 자동차 부문 3회 우승 후 올해 10회 우승에 도전하는 스테판 피터한셀(46·프랑스)도 당시 연료 문제로 완주에 실패했다.

2009년부터 남미로 지역을 옮긴 다카르 랠리는 최근 한국 업체의 참가가 저조해 김 단장으로서는 아쉬움이 크다. “꼭 다시 참가하고 싶지만 국내 차 메이커들의 지원 없이 참가가 어려운 게 다카르 랠리입니다. 자동차 성능을 테스트하고 브랜드를 홍보할 수 있는 기회인데도 유독 국내 업체의 참가가 저조한 것이 의문이에요.”

용인=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