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가 상품이 시장경제 망친다”… 월마트 이펙트
입력 2011-01-13 20:42
월마트 이펙트/찰스 피시먼/이상 미디어
#장면 1. 2010년 한국. 롯데마트가 전국 82개 매장에서 900g짜리 ‘통큰 치킨’을 5000원에 팔기 시작했다. 일반 치킨점의 3분 1 이하 가격이니 소비자들이 몰렸고 기존 치킨판매점이 반발했다. ‘소비자 선택’이냐 ‘상생의 원칙’이냐를 놓고 논란이 일었고, 앞서 지름 45㎝짜리 피자를 1만1500원에 팔기 시작한 이마트로 불똥이 튀었다. 급기야 재계와 정계 인사들이 끼어드는 헤게모니 다툼으로 번지자 롯데마트는 1주일 만에 ‘통큰 치킨’ 판매를 중지했다. 그러나 이후 치킨 체인점들은 가격거품 비난으로 판매에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다.
#장면 2. 1998년 미국. 월마트가 전국 2500개 매장에 블래식(Vlasic)사의 1갤런(약 3.78리터)짜리 오이 피클 단지를 2.97달러에 내놓았다. 무게만 5.4㎏이 넘는 피클이 3달러도 안되니 불티나게 팔렸다. 그러나 거대한 단지가 팔릴수록 블래식은 손해를 봤다. 월마트 외 다른 거래처에 납품되는 피클 제품이 팔리지 않았고 저렴한 피클을 조달하기 어려워졌다. 블래식이 단가를 올리자고 했지만 월마트가 거절했다. 소비자들도 피클의 4분의 1만 먹고 버렸다. 애초 상하기 전에 다 먹기란 불가능한 크기였다. 결국 1갤런 피클 단지가 월마트 매장에서 밀려난 직후 블래식은 파산신청을 했다.
매출액 기준 세계 최대 기업 월마트가 시장경제를 교란시키고 파멸로 이끌고 있다는 주장을 담은 고발서 ‘월마트 이펙트’가 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 기자를 거쳐 비즈니스 전문지 ‘패스트 컴퍼니’ 수석기자로 활약 중인 저자 찰스 피시먼은 월마트가 상품가격을 안정시키고 고용을 촉진시켜 지역경제에 활력소를 주는 긍정적 효과를 보이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는 최저가를 무기로 소비자를 현혹시키고 제3세계의 노동력 착취를 유발하며 지구환경마저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불편한 진실’을 밝히기 위해 직접 현장을 찾아가고 실제 사례를 취재한 뒤 이를 9개의 장으로 나눠 낱낱이 고발한다.
책을 펼치면 월마트 성공 신화에 가려 드러나지 않았던 부작용과 비극들이 이어진다.
월마트와 거래하던 최대 공급사들 중 50%가 파산했다. 1994년을 기준으로 월마트와 거래량이 많은 상위 10개 기업 중 4곳이 연달아 파산했고, 5위 기업은 실적 하락을 못 이겨 비상장 기업으로 몰락했다. 완벽하게 과학적인 분석은 아니지만 월마트와 거래하던 5대 기업이 줄줄이 퇴출됐다는 사실은 틀림없다.
또 값싼 상품에 중독된 소비자들은 값싼 상품만 찾는 사이 자신들의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사실은 인식하지 못한다. 실제 1997∼2004년 미국 제조업 일자리는 20% 가까이 줄었는데, 월마트의 저렴한 중국산 상품 수입량은 같은 시기 200%나 늘었다.
월마트와 거래하다 브랜드 가치 하락을 경험한 기업도 있다. 리바이스는 창립 150주년인 2002년 월마트에 입점한 뒤 50달러 이상을 받던 ‘어덜트 리바이스 시그너처’ 청바지를 20∼23달러에 내놨다. 청바지는 날개 돋친 듯 팔렸지만 이후 리바이스의 명성은 퇴락했다. 소비자들은 최저가가 아닌 품격 있는 리바이스 청바지를 원했던 것이다.
“(리바이스의 사례는) 월마트 효과의 부정적인 측면을 확인시켜주는 결과였다. 리바이스 청바지 상품이 내건 ‘가치’는 저렴한 가격이었다. 그 결과 지난 150년간 리바이스 청바지의 핵심이었던 가치가 완전히 달라졌다.”(127쪽)
저자는 각 기업 재정 상태에 대한 자료를 근거로 월마트 수요독점의 폐해를 고발한다. 월마트와의 거래량이 전체 거래의 10% 이하인 기업은 12.7%의 이윤을 유지하지만 자사 상품의 25% 이상을 월마트와 거래하는 기업은 7.3%의 이윤만 얻었다. 즉 월마트와의 거래는 일시적이고 외형적인 성공일 뿐이며 독이 든 사과를 집어든 행위라는 설명이다. 이어 소비자들이 월마트에서 식료품비를 아낀다고 해서 재정 상태가 호전되지 않으며, 월마트가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주장 역시 경쟁업체의 일자리를 빼앗은 것에 불과하고, 제3세계의 노동자들의 삶의 짊과 환경파괴에 월마트가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월마트에 공급하는 바지 뒷주머니의 덮개를 재봉했던 16살 방글라데시 소녀 액터는 시간당 13센트를 받고 하루 14시간씩 일했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감독관이 뺨을 때렸다. 휴일은 1년에 10일이고 작업대에서는 물조차 못 마신다. ‘전 재를 묻혀 손가락으로 이를 닦아요. 칫솔이나 치약을 살 돈이 없거든요’라고 액터가 말했다. 다른 사람들이 칫솔 살 돈도 못 벌게 만들면서 값싼 옷을 사 입어야 할까?”(219∼220쪽)
저자는 월마트가 최저가의 함정에 빠져 공정과 상생의 가치를 망각하다간 납품 기업과 소비자는 물론 자신까지 공멸에 이를 수밖에 없다고 경고하고, 국가 차원의 통제와 간섭이 절실하다고 호소한다. 책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월마트는 비록 한국에서 물러났지만 ‘통큰 치킨’이나 이마트피자 같은 초저가 상품이 소비자 선택을 이유로 속속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정씨가 번역하고 현용진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가 감수했다.
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