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신 노동자 故 배달호씨의 삶과 죽음 추적한 김순천 작가
입력 2011-01-13 17:40
“평범했던 그를 사지로 내몬 건 신자유주의… 노동자들이 웃으면서 일하는 세상 됐으면”
고(故) 배달호씨는 두산중공업에서 근무하던 평범한 ‘노동자’였다. 굳이 그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자면 그는 두 딸을 사랑한 자상한 아버지이자 동료가 상을 당하면 먼 산골이라도 굳이 찾아갔던 마음 따뜻한 동료였으며, 노모를 위해 지붕을 이어 주던 든든한 맏아들이자 가압류로 몇 달째 ‘0’이 찍힌 통장이 부끄러워 수도꼭지라도 고쳐 주고 떠났던 남편이었다.
지극히 인간다운 삶을 바랐던 그는 그러나 신자유주의 논리에 밀려 일터에서 내몰린 끝에 2003년 1월 9일 새벽, 분신으로 마지막 저항의 불꽃을 사르고 세상을 떠났다. 최근 그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인간의 꿈’(후마니타스)을 펴낸 김순천(사진) 작가를 11일 만났다.
8년 전에 숨을 거둔 그를 왜 되살렸는지 묻자 김 작가는 “슬픔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슬펐어요. 2003년 인터넷으로 그의 영정 사진을 접했는데 무척 슬펐던 기억이 납니다. 20년 넘게 다니던 회사에서 겪어야 했던 그의 사연도 가슴 아팠고요. 그러다 2008년 주위에서 그에 대한 글을 써보라고 권유해서 뒤늦게 책을 내게 됐습니다.”
김 작가가 그의 삶을 추적하고 집필하는 데 2년이 걸렸다. 워낙 평범한 사람인데다 일기나 메모 등을 거의 남기지 않아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퍼즐 맞추듯 그의 삶의 궤적을 꿰어야 했다.
“주변인물 60여명을 만나 인터뷰를 했는데 대부분 그에 대해 자세히 기억하지 못했어요. 그냥 마음이 따뜻하고 다른 사람과 잘 어울렸던 사람이라는 말만 되풀이돼 특이한 점을 찾는 게 어려웠어요. 당시 회사 상황과 시대상을 묘사하는 문제가 민감해서 신중을 기하느라 시간이 더 걸렸고요.”
김 작가는 그의 삶과 죽음, 남은 가족들의 이야기 등을 7부에 걸쳐 자세히 담았다. 1953년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중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그가 한국중공업에 입사했다 회사가 두산중공업으로 넘어가고 구조조정을 겪으며 결국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과정을 낱낱이 기록했다. 열사도 투사도 아닌 평범한 ‘인간’의 고뇌를 담다보니 당시 대기업 노동자들의 아슬아슬한 일상사가 생생하게 전해진다. 부록에는 그의 시신을 둘러싸고 회사와 대립하면서 부인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썼던 편지와 회사 관리직의 양심선언, 홍세화씨의 칼럼, 김진숙씨의 추도사 등을 넣어 당시 사회적 파장을 전했다.
책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묻자 김 작가는 “노동자들이 웃으면서 일하는 세상이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책을 막 쓰기 시작할 무렵 두산중공업의 구조조정을 이끌었던 박용오 회장의 자살 소식을 접했어요. 같은 시대에 살았던 두 사람의 전혀 다른 죽음은 제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노동자를 사지로 내몬 자본가도 결국 피해자라고 생각하니 혼란스러웠어요. 무한경쟁이나 신자유주의라는 말이 얼마나 무서운지 다시 한 번 깨달았어요. 배달호 같은 분도 행복하고, 박용오 같은 분도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정말 없을까요?”
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