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라의 수다] 소비자 책임

입력 2011-01-13 18:08


겨울이 되면 서울의 전철은 밍크 담비 여우 토끼 양 등 갖가지 동물을 볼 수 있는 동물원으로 변한다. 문제는 중년부인들의 목에 둘러지거나 코트와 조끼로 짜깁기되고 부츠나 모자를 장식하는 이 동물들이 모두 죽었다는 것이다. 서울에는 모피 입는 사람이 유난히 많다. 모스크바를 제외하면 가장 많은 것 같다.

그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모피코트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고 있을까? 학교 다닐 때 다큐멘터리 영화를 봤다. 동물들이 가스에 질식당하거나 전기충격으로 죽어가는 모습, 덫에 걸려 고통스럽게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 산 채로 가죽이 벗겨지는 모습이 나왔다. 이 영화는 한국에서도 방송됐고 인터넷에서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동물 학대의 잔인한 풍경은 큰 화장품 회사의 실험실, 집단사육농장, 도살장으로 이어진다. 만약 극영화에서 그런 장면이 나온다면 과도한 폭력성을 근거로 미성년자 관람불가 판정이 내려질 것이다. 그러나 이 풍경들은 어느 영화감독의 변태적 상상력이 아니라 피비린내 나는 현실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소비자들은 이 사태에 책임을 느껴야 한다.

동물 학대뿐이 아니다. 우리가 소비하는 옷, 화장품, 식품의 가격을 낮추기 위해 소중한 자연이 파괴되고 아동과 개발도상국 노동자들이 착취당하고 있다. 우리는 돈을 내고 소비할 뿐이지만 그 돈을 벌어들이는 기업은 지구와 인류에 어마어마한 재앙을 불러온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시위가 한창일 때, 나는 미국산 쇠고기를 사먹으라고 강요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토록 반대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자기가 먹는 음식이 어떤 조건에서 생산되고 유통되는지, 건강에 해롭지는 않은지 알아보는 노력을 하지 않는 소비자가 정부에 책임을 전가하는 건 논리적이지 않다. 소비자에게는 세계적 대기업도 움직일 수 있는 무기가 있다. 바로 불매운동이다!

석유회사 셸은 필요 없어진 석유저장시설 브렌트스파를 대서양 심해에서 폭파하려다가 1995년 소비자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쳤다. 여러 나라 소비자들이 수개월간 셸 주유소 불매운동을 벌인 것이다. 재정 손실이 커지자 셸은 결국 그 계획을 포기하고 자연친화적 폐기법을 택했다. 같은 해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무르로아 환초에서 핵실험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국제적으로 프랑스 제품 불매운동이 벌어졌고, 현재 그 실험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런 예는 수도 없이 많다. 소비자들이 한마음 한뜻이 돼 벌이는 불매운동은 언제나 효과가 있다. 결정은 소비자 몫이다. 제품에 대해 알아보는 일이 수고스럽지만 그 수고가 불러올 효과를 생각하면 결코 수고가 아니다. www.gutguide.com 같은 인터넷 사이트는 시중 제품에 인체 유해 성분이 들어있는지 뿐 아니라 각 기업의 윤리적 입장, 자선활동, 근로조건 정보를 제공한다.

소비자로서 우리 모두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나는 이미 오래전에 결정을 내렸다. 동물 학대, 어린이 노동, 개발도상국 착취를 통해 만들어진 제품은 한국에서도, 유럽에서도 사지 않는다.

베라 호흘라이터(tbs eFM 뉴스캐스터)

번역 김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