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김상온] ‘미디어 혁명’으로 북한 변화시키기
입력 2011-01-12 18:58
“남북한 상호 방송 허용을 북한에 먼저 제의하라. 공세적 접근방법이 필요하다”
미디어가 사회와 문화의 방향을 결정하고 변화를 견인한다는 설을 ‘미디어 결정론’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설에 따르지 않더라도 미디어가 사회변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몇몇 사례가 있다.
①1933년 1월 31일 독일(당시는 바이마르공화국). 전날 내각 총리로 임명된 아돌프 히틀러의 첫 라디오 방송이 전파를 탔다. ‘대중연설의 귀재’ 히틀러는 매일 저녁 7시 당시로서는 새로웠던 이 문명의 이기를 통해 많은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같은 해 7월 의회를 통해 바이마르공화국을 무너뜨리고 나치 일당독재를 실현시켰다.
②1978년 10월 31일 이란에서는 팔레비 왕조에 반대하는 석유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했다. 국가 수입의 주종을 이루는 석유산업 종사자들의 파업에 이어 일부 군인들마저 무기를 들고 탈영하자 79년 1월 팔레비 정부는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이슬람 신정(神政)국가를 탄생시킨 이 격변의 배후에 카세트테이프가 있었다. 반정부 시위와 파업도, 군인들의 이탈도 프랑스 파리에 망명 중이던 이슬람 지도자 호메이니가 만들어 국내에 뿌린 연설 카세트테이프가 씨앗이었다.
③1999년 12월 미국의 시사주간 타임이 동유럽 민주화 10주년을 맞아 현지 르포기사를 실었다. 마지막으로 민주화된 루마니아의 한 시민이 털어놓은 말. “공산독재 시절 TV를 통해 ‘댈러스’(미국 상류층의 사랑과 음모 등을 다룬 80년대 인기 미국 드라마)를 보면서 기가 막혔다. 지구 한편에는 저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구나 싶으니 억장이 무너졌다. 우리는 왜 저렇게 살 수 없을까 하는 의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루마니아는 시민봉기로 무너졌고 독재자 차우셰스쿠는 시민들에 의해 직접 처형됐다.
미디어 결정론적 시각으로 보자면 ‘미디어 혁명’이라고 할 만한 이런 사례들은 ‘북한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시급하면서도 해묵은 숙제와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디어를 활용해 북한(인민)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게 그 시사점이다.
마침 북한에서도 최근 각종 미디어를 통한 외부 정보 유입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바로 이런 추세를 더욱 강화시키는 게 절실하다. 지난 연말 보도에 따르면 북한 장마당에서는 남한 영화와 드라마를 담은 DVD와 USB가 많이 거래되고 있고, 북한 젊은이들은 한국은 물론 미국 드라마에 열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DVD 혁명’이 북한에서 태동하고 있는 거나 아닐까 생각하면 대단히 고무적이다. 북한 인민들이 외부 정보를 접하면서 마음에 회의가 생기고, 그것이 누적되면 사회변화가 촉진될 수밖에 없다. 다만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이런 현상이 사회변혁의 동인으로 발전할 때까지 손놓고 기다릴 수만은 없다. 그러기엔 너무 오래 걸린다.
정부도 앞으로는 북한을 변화시키는 정책에 중점을 두겠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방안은 아직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런 만큼 그 방안의 하나로 남북한 상호 방송 허용을 북한에 제의하는 것을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 기존 대북 단파방송과는 달리 남북한이 동시에 상호 방송을 청취·시청할 수 있다면 북한도 반대만 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울러 상대방을 겨냥한 특별 프로만 방송하는 게 아니라 기존 방송 그대로 가감 없이 송출한다는 전제를 붙인다면 어떨까.
물론 그에 따른 부작용도 있을지 모른다. 우선 북한 방송의 선전에 넘어간 일부 남한 국민들 사이에 친북·종북 경향이 확산될 수 있다. 또 남한의 실체에 접한 북한 주민들 사이에 실망감이 생겨날 수도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남한 방송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접한 북한 주민들의 변화 열망이 더 클 수밖에 없다. 남한 방송에 포함된 정부 비판, 심지어 반정부적 내용은 오히려 북한 주민들에게 정부까지 비판할 수 있는 자유에 대한 갈망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으레 안 되겠거니 하고 미리 움츠러들어서는 안된다. 거의 항상 북한이 제안하고 남한은 수세적 입장에서 대응하기 바빴던 도식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북한을 곤혹스럽게 하고, 북한의 변화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공세적 접근방법이 필요하다.
김상온 카피리더 so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