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기 낙마] “두루미는 씻지 않아도 하얗다” 5쪽 장문 사퇴서 낭독

입력 2011-01-13 00:34


“여당까지도 저에게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습니다. 법이 예정하고 있는 청문회에 설 기회조차 박탈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직면한 것입니다.”

형식은 ‘자진 사퇴’였지만 내용은 ‘자진(自進)’이 아니었다.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는 12일 사퇴 기자회견에서 5장 분량의 긴 사퇴서를 읽어 내렸다. 목소리가 격하진 않았지만 정치권과 언론에 대한 서운함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이날 새벽 집에서 후보자가 직접 작성한 글이다.

그는 19∼20일로 예정된 국회 인사청문회도 거치지 못하고 사퇴하게 된 데 대한 진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는 “할 말은 많았지만 청문회를 통해서 진솔하게 설명하면 국민 여러분께서도 충분히 납득하시리라고 믿고 기다려왔다”면서 “청문 절차를 정치행위로 봉쇄한 일련의 과정은 살아있는 법을 정치로 폐지한 것으로 법치주의에 커다란 오점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그간 자신에게 제기된 각종 의혹도 모두 부인했다. 대통령직인수위에 들어간 후 법무법인 바른에서 받은 급여가 2배로 뛰었다는 주장에 대해 “7개월간 매월 3000만원을 받았고, 나머지는 퇴직하면서 실적에 따른 상여금으로 받은 것”이라며 “국세청에 신고한 것과 달라서 인수위에 가서 봉급액이 다른(많이 오른) 것처럼 됐는데 가기 전과 차이가 없다”고 해명했다. 그는 이어 “30여년 법조 경력을 가진 변호사 급여와 이제 막 출발한 변호사 급여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그 정도는 국민들도 용인하리라 본다. 다만 국민들 마음을 아프게 한 것 같아 송구하다”고 덧붙였다.

청와대 민정수석 당시 총리실의 민간인 사찰내용을 보고받았다는 의혹도 전면 부인했다. “민정수석이란 자리가 한가하게 그런 사안까지 보고받을 곳이 아니다”며 “총리실에서 조사한 사항이 민정수석실에는 보고되지 않는다. 그만한 비중이 안 된다”고 했다.

그는 또 거취 결정이 늦어진 이유로 “생각이 복잡했다”고 고백했다. 사퇴 결정을 청와대와 조율했느냐는 질문에는 “의견 교환은 있었지만 저 스스로 결정한 일”이라며 “오늘 아침 청와대에 통보했다”고 답했다.

시종일관 당당한 태도로 기자회견에 임한 그는 “두루미는 날마다 미역 감지 않아도 새하얗고 까마귀는 날마다 먹칠하지 않아도 새까맣다는 성현의 말씀으로 위안을 삼으며 이 자리를 떠납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서울 통의동 금융감독원연수원에 마련된 후보자 사무실을 떠났다.

그는 오후 정부 법무공단 이사장 자리에서도 물러났다. 감사원 관계자는 감사원장 후보자에서 사퇴하면서 공단 이사장에 그대로 있는 게 옳지 않은 것 같다는 게 정 후보자의 말이라고 전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