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영광’의 교문 다시 활짝… 폐교 위기서 거듭 난 강화 삼산승영중학교를 가다

입력 2011-01-12 18:00


인천 강화군 석모도가 온통 눈으로 덮인 건 오랜만이라 했다. 강화 외포리선착장에서 배에 몸을 실은 지 10분, 새하얗게 변한 섬이 눈앞에 펼쳐졌다. 7일 오전 제설작업 안 된 석모도 해안도로를 따라 차가 움직였다. 햇살은 바다에 반사돼 더욱 밝게 느껴졌다.

좁은 언덕길은 빙판이었다. 승합차가 굉음을 냈다. 차 앞바퀴는 헛돌고 차체는 이리저리 흔들렸다. 어렵사리 차는 언덕 위 평지에 올랐다. 허름해 보이는 2층 건물이 보였다. 건물 앞 넓디넓은 운동장, 온통 눈밭이었다. 여기저기로 발자국이 나 있었다. 신발 자국과 동물의 발자국이 뒤섞여 있었다. 발자국은 하얀 도화지에 그림을 그려 놓은 듯 묘한 조화를 이뤘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전, 큰 돌에 새겨진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믿음으로 승리, 하나님께 영광.’ 석모도 유일의 중학교, 삼산승영중학교의 첫 인상이었다.

이 학교에 무슨 일이?

이 학교는 1947년 11월 삼산공민학교로 개교한 뒤 줄곧 석모도 상봉산 중턱, 지금의 자리를 지켜오다 67년 삼산승영중학교로 이름을 바꿨다.

유대관 목사를 비롯한 3명이 학교를 설립했지만 하나님 말씀을 기초로 학생을 가르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전등사와 보문사로 상징되는 강화도, 석모도는 다른 어느 지역보다 불교의 영향력이 컸다. 이 학교 역시 불교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학교는 다른 도서 지역 학교와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됐다. 뭍으로 나가는 사람이 많아졌다. 학생 수는 감소했다. 한때 350명에 달했던 재학생 수는 2004년 12월, 34명으로 급격히 줄었다. 교사 역시 하나둘 섬을 빠져나갔다. 폐교 얘기가 나왔다. “하나 남은 중학교마저 없어진대.” 학부모의 고민은 깊어 갔다. 타 종교 재단에서 학교를 인수해 명상 시설로 활용한다는 계획이 입에 오르내린 것도 이때쯤이었다.

학교 존립 자체가 위태롭던 2005년,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경기도 부천시 송내동 참된교회 장로인 노재환(58) 이사장이 학교를 인수하고 나서부터였다.

“목사님과 선교사님이 힘을 합쳐 세운 학교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학교 상황을 듣는 순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곳을 하나님 향기가 나는 곳으로 바꿔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자신 있었다. 성공 경험이 있었다. 불교 재단 소속이었던 서울 신정동 영등포여상을 인수해 서울영상고를 설립, 미션스쿨로 바꾼 바 있다.

노 이사장은 삼산승영중을 인수한 뒤 학교 이름부터 변경했다. ‘승영’이라는 이름은 설립자인 이승목, 이영재 부자 이름의 가운데 한 자를 따온 것이었다. 음(音)은 놔두고 ‘믿음으로 승리(勝), 하나님께 영광(榮)’으로 한자를 바꿨다. 입학식과 졸업식 명칭도 각각 ‘입학감사예배’ ‘졸업감사예배’로 갈음했다. 하나님 영광 돌리는 장소로 만들기 위해 조그만 것부터 바꿔나가기 시작했다.

노 이사장은 친형 때문에 신앙을 가지게 됐다. 형은 경남 진주에서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 절친한 친구의 전도로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당시 가족 중 형님만 하나님의 말씀을 접했습니다. 어린 마음에 감동과 은혜를 받았던 것 같아요. 온 가족을 하나님께 인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명감을 느꼈던 거죠.”

가족 중 하나가 변화됐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작은 변화는 가족 모두의 변화로 이어졌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등 온 가족이 형을 따라 교회에 나갔다. 이 어린 시절의 기억이 노 이사장이 학원선교에 나서는 이유다. “어린 학생일지라도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다는 걸 형이 보여줬습니다.”

삼산승영중 세 가지 보물

학교에는 노 이사장의 학교 운영 정신을 보여주는 세 가지 특징적 장소가 있다. 그는 그 세 곳을 ‘보물’이라 표현했다.

먼저 1층 강당. 교실 하나 크기인 그곳의 이름은 승영교회다. 드르륵 미닫이문을 열고 조심스레 강당, 아니 교회에 발을 들였다. 조그만 강대상 뒤쪽에 커다란 십자가가 걸려 있었다. 왼쪽에는 검은색 피아노가 반주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의자는 가로 10개, 세로 4줄로 오와 열을 맞췄다. 뒤쪽 탁자에 여학생 몇 명이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승영교회는 이 학교 학생이 책을 읽고, 피아노를 칠 수 있는 친근한 곳이었다.

2007년 교회를 만든 뒤 노 이사장의 부인 이은섭(54) 권사는 학생의 집부터 부지런히 방문했다. 물론 냉대받기 일쑤였다. “왜 거기에 교회 다니는 핵교를 해서 말썽을 부리고 그랴?”라는 질책도 심심찮게 들었다. 하지만 굴하지 않았다. 눈이 쌓여 미끄러운 길도, 여름철 무더위도 그를 막지 못했다. 그 결과 승영교회에는 현재 학생, 학부모, 인근 해병대 부대원 등 40명 정도가 출석하고 있다.

교인 수는 얼마 되지 않지만 교회는 여러 가지 일을 한다. 방학 기간 학교에서 열리는 영어캠프 비용도 일부를 댄다. 지난해 말 캐나다 학생을 초빙해 개최한 영어캠프에 전교생 44명이 적은 비용만으로 참가했다. 매해 1000만원의 몽골 선교헌금, 석모도 내 노인정 지원금도 승영교회가 감당하고 있다. 지난해 말엔 개안수술을 통해 5명에게 새 눈을 주기도 했다. 학교 관계자는 강당을 기적의 장소라 부른다.

강당은 매주 금요일 채플로 쓰인다. “중학교는 의무교육기관이라 채플 참여를 강제할 수는 없습니다. 연극, 특강 등 재밌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학생들이 스스로 채플을 찾도록 하고 있어요. 참석률이 점차 높아지고 있습니다. 하나둘 늘어가는 학생들을 보면 뿌듯하죠.”

학교 1층 반대편 구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English Only Zone’이라는 푯말이 걸려 있었다. 이 구역에 들어서는 순간 모두 영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했다. 노 이사장, 이 권사 등 모두가 입구에서 일제히 걸음을 멈췄다. “저쪽으로는 잘 안 가요. 그곳에 발을 들이면 영어를 써야 하니까요.” 이 권사가 크게 웃었다.

인천시교육청에서 파견된 원어민교사 앤드루 모리스(26)가 잉글리시 존 안에서 학생 몇 명과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학생들의 영어 솜씨는 훌륭했다. 3학년 윤지현(15)양은 “선생님과 친하니 영어 쓰기가 편해요. 자주 잉글리시 존에 들어와서 대화를 나눠요”라며 활짝 웃었다. 모리스 역시 “영어교육에 대한 이사장의 철학이 확고하고 아이들도 잘 따라주어 즐겁게 가르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학교는 영어특성화를 차별화 전략으로 삼았다. “형편이 어려운 우리 아이들이 최대한 좋은 환경에서 영어를 배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노 이사장은 ‘영어’하면 삼산승영중이 떠오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덧붙였다.

마지막 보물은 학교 옥상에 올린 간이 건물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남자 아이 몇 명이 절도 있는 손동작으로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태! 권!”

노 이사장이 말했다. “섬 아이들은 착하고 자기들끼리는 잘 노는데 기상이 좀 약하다고 할까요. 당당하고 자신 있게 살라는 의미로 체육관을 만들었고 본격적으로 태권도를 가르칠 계획입니다.”

학생들은 처음 보는 사람이 들어오자 당황한 듯했다. 하지만 이내 제 목소리를 찾았다. “좋았어! 더 크게!” 노 이사장의 구령에 따라 학생들은 체육관이 떠나가라 기합을 질렀다.

열악함 속 희망을 보다

“참 열악한 섬입니다.”

여름이면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아름다운 섬. 하지만 이 권사는 안타까움을 감추지 않았다. “다녀보면 결손가정이 참 많아요. 열악한 가정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공부하려는 학생들을 보면 기특하고 감사합니다. 그때마다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도 느끼고요.”

기독교 기반 교육에 대한 주민 항의는 초창기보다 줄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학생은 20% 정도에 불과하다. “쉽게 늘지 않아요. 시작에 불과합니다. 갈 길이 멀죠.”

그래도 노 이사장은 조그만 변화 속에서 희망을 본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이브, 세족식을 했습니다. 매년 졸업을 앞둔 아이들의 발을 씻어주죠. 처음엔 거부하고 도망간 아이들이 많았어요. 근데 이번엔 오히려 씻겨 달라는 아이도 많더군요. 감동해 엉엉 울던 학생도 있었고요. 찡했습니다.”

선교사 정신을 가진 교사의 열정도 적지 않은 힘이 된다. 지난해 부임해 영어과목을 맡고 있는 김대민(32) 교사와 사회과목 박상우(34) 교사. 채플 시간 김 교사는 말씀을 전하고 박 교사는 찬양을 한다.

박 교사가 말했다. “저는 교사지만 본업은 선교사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좋은 분인지 아이들과 나누고 싶어요. 학생과 학교를 위해 많이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듣던 이 권사가 안타까운 듯 말했다. “선생님들 장가부터 보내드려야 하는데…. 학생 가르치고 선교하느라 자기 시간도 못 만들고 너무 고생이 많아요.”

김 교사는 수줍게 웃었다. “물론 제 평생지기를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이 어린 나이에 하나님을 제대로 만나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 한번 그의 품에 들어가면 행복하고 힘차게 살 수 있잖아요. 그걸 꼭 알게 해주고 싶어요.”

강화=글 조국현 기자·사진 김태형 선임기자 jo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