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선 약사의 미아리 서신] 집 나간 큰 아드님은 돌아 오셨는지요?
입력 2011-01-12 17:53
겨울바람에 맞서 길을 걷기가 어려운 1월의 한가운데를 오늘도 무사히 보내고 계신지요.
아침나절 출근 준비를 하면서 거울을 보다 두꺼운 코트와 머플러, 장갑까지 갖춰 한 마리 곰이 되어 있는 저를 보고 혼자 피식 웃곤 합니다.
잠시 나들이를 하여도 손가락과 발가락 끝이 차가워지고, 얼굴은 감각이 없어지면서 괴로워지는 겨울을 보내고 있긴 하지만 차가운 겨울바람이 가져다주는 명징한 산뜻함은 참으로 좋습니다. 세상은 나무장작으로 군불을 땐 뜨끈한 안방이어서 밖으로 나가기가 싫고, 그 방안에서 뒹굴고 싶어지는 아주 속물스러운 제 모습을 바로 볼 수 있는 때가 한 겨울인 것 같습니다.
어깨를 펴고 당당히 찬바람을 맞으면서 환난을 견디어 내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성숙함을 제가 느낄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환난은 그저 짓누르는 고통이 아니고 그 안에 아주 작은 소망이라는 씨앗이 새근새근 잠자고 있음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많이 힘들어합니다.
눈앞에 펼쳐지는, 끔찍해서 주저앉고 싶은 그런 순간이 우리의 발목을 붙잡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가끔 궁금했지요. 끈질기게 발목을 잡고 유혹하는 환난이라는 녀석과의 싸움에서 늘 이기시고 있는 그 권사님의 담대함이 어디서 나오는지.
공직생활을 하셨던 바깥 어르신 덕에 세상 어려움 모르고 살았었는데 사업을 하던 큰아들 가정이 풍비박산 난 뒤 남겨진 손자와 병든 남편은 당신 몫이 되어버렸다는 이야기를 하시는 권사님의 얼굴은 언제나 맑고 평안해 보였습니다. 그렇지만 가끔은 버거워 보이기만 하는 당신의 십자가를 당신이 지고 갈 수 있는지 하나님 아버지께 정말 여쭈어 보고 싶었다고 말씀하셨지요.
가물어 메말라 버린 흙먼지 풀풀 날리는 삶의 자락 사이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한줄기 샘을 흐르게 하심을 보았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일흔이 다 된 나이에 젊은 사람도 하기 힘들다는 밤 주방 일을 감당할 수 있는 튼튼한 팔과 다리를 주셨으니 감사할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날 일한 삯을 그날 받아 하루 생활에 필요한 것을 사서 생활을 할 수 있으니 감사할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여자는 단정하고 다소곳해야 한다고 성경책에 써있다면서 당신이 가진 옷 중에 가장 좋은 옷을 입고 단정하게 차리고 일하러 나온다고 말씀하십니다. 곱게 웃는 권사님의 미소는 따스한 겨울 햇살 같습니다. 옛날에 잘살던 시절 입던 옷이 이렇게 잘 어울리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하시는 그분은 환난 속에서 잠자고 있는 소망을 보신 분일 것입니다.
그분을 알고 지낸 지 한참 지났을 무렵, 무릎관절에 무리가 오고 통증을 자주 호소하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출근 안 하는 날이 점차 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허리가 조금씩 굽어지기 시작했고, 발걸음도 불편해 보였지요. 그분의 환난이 언제쯤 끝날 수 있는 것인지 하나님 아버지께 여쭈어 보고 싶었습니다. 얼마나 더 팍팍한 길을 가야 하는지도 여쭈어 보고 싶었습니다.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어도, 포도나무에 포도가 열리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에 대한 찬양을 멈추지 않았던 하박국 선지자의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몹시 추운 겨울이라서 무릎 관절염과 허리 통증이 심하실 텐데 어찌 지내시는지 정말 걱정입니다.
집을 나간 큰아드님은 이제 돌아 오셨는지요. 아빠가 보고 싶다고 보챈다는 손자도 이제 많이 커서 아마 중학생이 되었겠네요. 영감님의 병세는 좀 나아지셨는지요.
오늘도 권사님은 깔끔한 옷에 고운 화장을 하고 어딘가에서 부지런히 일을 하고 계실 것입니다. 권사님이 품으신 환난의 열매가 얼마나 튼실하게 영글었는지, 하나님 아버지의 크고 한량없는 사랑에 대해 오늘도 열심히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계실 것입니다. 마치 하박국 선지자처럼.
이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