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영재’ 자살로 본 입학사정관제 그늘… 인재 뽑아 재능 썩힌다
입력 2011-01-11 20:47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입학사정관제로 입학한 전문계 고교 출신의 ‘로봇 천재’ 조모(19)군이 성적 문제로 최근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입학사정관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입학사정관제 안착을 위해선 학생 선발뿐 아니라 사후 관리에도 관심을 쏟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서울대에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입학한 A씨(20)는 강의를 들을 때마다 진도를 쫓아가기 급급하다고 했다. 지방의 농업고를 졸업한 A씨는 10일 “고등학교 때 수학Ⅱ는 아예 안 배웠는데 대학에서는 당연히 배운 걸로 생각하고 더 어려운 것을 가르친다”며 “생물도 생물Ⅰ만 배웠는데 대학에서는 생물Ⅱ까지 공부한 학생을 기준으로 가르치니 쫓아가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A씨는 “부족한 공부를 보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입학사정관제는 소질과 잠재력을 보고 학생을 선발하자는 제도로 현 정부의 대표적 대입 정책이다. 그러나 선발 후 관리를 하지 않을 경우 잠재력만으로 선발된 학생이 뒤처질 수 있다. 실제로 서울시내 한 대학에서는 지난해 입학사정관제로 선발된 학생 몇 명이 교과 과정을 따라가지 못해 중퇴하거나 다른 학교로 편입했다. 특히 조군처럼 전문계고 출신 학생들이 입학사정관제로 대학에 들어간 뒤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도 나름의 후속 조치를 고민하고 있다. 이화여대는 올해 입학사정관제로 선발된 660명 중 120명을 대상으로 17일부터 2주 동안 영어 등을 강의하기로 했다. 서울대도 기초교육원을 통해 영어 수학 등 기초 교육을 제공한다.
그러나 이 같은 프로그램이 입학사정관제 선발 학생의 사후 관리 대책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점이 문제다. 카이스트도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 사전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했지만 전문계고 출신인 조군이 교과 과정을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에 따라 일시적인 신입생 관리가 아닌 대학 전체의 지속적인 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또 재학생을 대상으로 기초학력 증진 프로그램이나 학교 적응 프로그램이 활성화돼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서울의 한 사립대 입학사정관은 “입학사정관 제도가 도입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학생 선발에만 몰두한 측면이 있다”며 “입학처가 학생 선발에다 후속 관리까지 하기는 어렵다. 후속 관리를 대학의 어느 부처가 어떻게 해야 할지 교통정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올해 각 대학은 4만1250명을 입학사정관제로 선발한다. 교과부는 입학사정관제 지원 예산으로 351억원을 배정했다. 교과부 관계자는 “예산 지원 대학을 선정할 때 후속 프로그램을 중요 평가 요소로 보겠다”고 말했다.
임성수 박지훈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