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바집 로비 의혹] 브로커 유씨, 향우회 활용 인맥 쌓고 위세부렸다
입력 2011-01-11 18:34
‘함바집’(건설현장 식당) 비리의 핵심 인물인 브로커 유모(65)씨가 지방자치단체장과 인맥을 만드는 과정에서 지자체장 출신 지역 향우회를 이용했다는 진술이 나왔다.
유씨의 로비 명단에 거론된 것으로 알려진 수도권 전직 자치단체장 A씨는 11일 “나는 유씨를 전혀 모른다”며 “유씨가 재인충남도민회(인천지역 충남향우회) 회장과 동업하면서 내 이름을 팔아 ‘호가호위’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재인충남도민회 회장 조모(54)씨는 충남 서천 출신으로 중소 건설업체 대표다. 조씨는 A씨 재직 시절인 2009년 8월 인천세계도시축전에 귀빈으로 참석하고 지난달 재인충남장학재단의 장학금 전달식에 A씨를 초대하는 등 최근까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A씨는 “조씨가 같은 충남 출신이고 향우회 일도 있어 몇 번 만난 적은 있지만 유씨는 본 적도 없다”고 했다. 조씨와 함께 수도권 건설업에 손을 댄 유씨가 두 사람의 관계를 알고 자치단체장인 A씨의 위세를 사업에 이용했다는 설명이다. 조씨와 유씨는 2000년대 후반 함께 사업하다 의견차로 사이가 틀어지면서 최근까지 서로 송사를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조씨는 2009년 유씨로부터 수천만원을 받고 인천 송도의 건설사업 이권을 건넨 혐의로 지난 9일 소환돼 서울동부지검에서 조사를 받았다. 조씨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유씨가 나를 통해 여권 유력 인사의 이름을 팔고 다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검찰 조사 중이어서 더 이상 말할 수 없다”고 했다.
비리 연루 의혹을 받는 전·현직 경찰 고위간부도 대부분 유씨를 처음 만나는 과정에서 고향이나 근무지가 같은 동료 경찰의 소개를 받았다. 유씨는 건설업계에서 위력을 과시하기 위해 개인적 연고나 향우회뿐 아니라 후원회를 통해 정치인과 접촉하려 했다는 정황도 포착됐다.
검찰이 확보한 유씨의 수첩에는 재계와 정관계를 아우르는 인사의 이름, 소속기관, 금액 등이 암호처럼 적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내용을 한눈에 알아볼 수는 없지만 글자가 모두 한글이어서 차분히 보면 이름이 무엇인지, 숫자가 무엇을 뜻하는지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건설사 관계자 등의 이름 옆에는 자릿수로 보아 금액임을 짐작할 수 있는 숫자가 적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이 수첩 내용을 해독해 증거로 들이밀자 유씨가 입을 열었다는 것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유씨가 100명 가까운 사람의 이름을 술술 불었다는 것은 궁지에 몰렸거나 검찰과 거래하려고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강창욱 전웅빈 기자 kcw@kmib.co.kr